냉장고에만 파먹기가 있는 건 아니다. 싱크대 상부장 파먹기
출근길 습관처럼 사던 커피를 끊고, 텀블러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한 계절이 넘은 듯하다.
굉장히 번거로울 것 같았지만 반복하니 아침에 세수를 하는 것처럼 루틴 중 일부가 되어서 잘 정착했다.
출근길 테이카웃 커피와 작별한 스토리는 다음에 따로 풀어보기로.
그러다 간헐적으로 실시됐던 재택근무가 전일 재택근무로 바뀌었는데, 이전의 루틴대로 열심히 텀블러 혹은 머그컵에 커피를 내려 마시던 원두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카페도 재택근무로 바뀔 당시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업 중이라 딱히 남은 원두가 많지는 않아서 원두를 주문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싱크대 상부장에 모여있는 찻잎들이 생각났다.
냉장고 파먹기도 하는데, 찬장 파먹기도 해 보자-
차를 습관처럼 마시는 타입은 아닌지라 내 돈을 주고 차를 산적은 거의 없는데,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차들이 제법 되었다. 특히 남편의 절친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거래처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좋은 차를 몇 통이나 가져다주어서 찬장 한 칸은 찻잎으로 가득 차 있다.
집콕 시즌으로 집을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찬장 안의 차들을 발견하고 나서 처음에는 저녁에 몸을 데우는 용도로 차를 마셨는데, 커피가 똑 떨어지고 나니 모닝커피로 차로 대체하면 어떨까 싶었다.
여러 종류의 차들 중, 3가지 정도를 꺼내 두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차를 우려내어 마신다. 주로 보이차나 녹차가 많지만, 오늘은 비염에 좋다는 작두콩차- 구수한 게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
커피를 마실 때에는 첫 모금이 들어갈 때 약간 위가 싸한(?) 느낌이 들면서 온몸을 깨우는 느낌이 드는데, 차를 마시면 은은하게 데워주고 릴랙스 되는 느낌이 든다.
사실 확실히 커피보다는 카페인이 덜 하거나 없다고 느껴지는 게, 아침에 먹으면 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뭔가 커피는 '일어나!!! 늦었어!!'라고 막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라면, 차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깨는 느낌적인 느낌...! 조금 더디지만 기분 좋게 잠이 깨긴 한다.
사실 재택근무가 끝나고 다시 회사에 가면 출근 러쉬로 인해 아침 피로도가 더 높아질 꺼라 차로 온몸을 깨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뭐든 나의 몸의 속도와 다르게 억지로 깨우거나 재우거나 달리게 하거나 하는 것이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같다. (회사 생활도 그래서 힘든 게 아닐까... 내 페이스와는 관계없이 회사의 페이스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ㅠㅠ)
찬장에 있는 차를 모두 소진하고 파먹으려면 6개월은 걸릴 것 같은데 ㅋㅋ 그때까지 차를 우리는 나의 모닝 루틴이 잘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마른 음식이 몰려있는 싱크대 상부장을 한번 열어보시면, 아 맞다 이거 있었지! 하는 차가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커피 한잔 대신 차로 대체해보시면서 상부장도 비우고 뜻밖의 힐링타임도 얻어보시길 추천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