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다 되어가지만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는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7살로서 내가 가진
마음의 무게를 담담히 털어놓고 싶은
5월 15일 스승의 날 새벽.
어릴 때 나는 소심했고
모든 것에 결정권이 없었다.
부모님의 말이 전부였고,
선생님과 친구의 말이 전부였다.
스스로 능동적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성인이 된 내가
무언가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면
부모님의 ( 조언 ) 인지 ( 반대 ) 인지
모를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했다.
모든 결정에 있어서
'부모님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을
따르고 존중해야했다.
그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합리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족의 비웃음을 샀다.
'합리적'의 기준에 얼추 부합해도
'잘해봐~'라는
비아냥인지 인정이지 모를 말들을 들어야했다.
단언컨대, 가족의 결정의 따랐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반대하는 도전을 했고,
가족들이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선택을 했다.
못하고 잘하는 것과 상관없이
가족의 비웃음을 무게로 지고
끝없이 실패만 했던 시간.
그 시간들을 위로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인정의 욕구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갈급함, 진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미뤄왔던 나의 '감정'들.
최근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무게'로 도졌지만
늘 그래왔듯 위로해줄 사람은 없다.
가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남들이 해줄 수 있는 위로의 한계는
명백해서, 듣는 게 더 상처였다.
커피에 대한 열정이
식은 지 오래이지만
불씨를 다시 살려
사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직장에서 나는
수많은 스타트업 제품들을 만나고
제품을 알기 위해 전문 지식까지 공부한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지'라는 생각이 늘 있다.
돈 때문에, 진로 때문에 붙어있는
직장이라는 공간은
영원할 수 없다.
마음의 무게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최근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았기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없이
찬양이나 설교 링크를
단체 문자처럼 던지는 크리스천 지인들,
취미 생활을 가지라거나 기도해보자는
시시하고 뻔한 위로들.
고민을 들어준 그 다음은 없고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간들.
아무 도움 안되는 위로와
더 도움 안되는 가족 때문에
숨막혀서 질식할 것 같은데,
삶은 그렇듯 늘 살아야 하고
SNS에서는 보여줘야 한다.
살아가고 보여주는 것이
이젠 힘 빠지고 숨막힌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알 것 같아,
늘 생각한다.
죽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고
정인이를 잃고 나서야 정인이를 부르짖는다.
인간은 어리석다, 나를 포함해.
결론이 늘 좋게 끝나니까
괜찮은 줄로만 아는 지인들.
가볍게 마음먹자,
즐겁게 마음먹자, 해도
숨막히는 순간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사람에게
세상은 포옹 한번 해주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찬양이나 설교 링크,
취미 생활이나 휴식이나 독서가 아닌
포옹이고
위로의 한마디인데 말이다.
포옹해주지 않는 세상 때문에
돈을 내고 포옹을 받는다.
마음의 무게로 절벽 앞에 선 이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이라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포옹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이 세상 아무것도 필요없고
그저 포옹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엉뚱한 말로
절벽 앞의 사람을 끝내 밀어버린다.
나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