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욕탕 Feb 07. 2024

달에 실어 보낸 마음, 정월대보름 2

그 어떤 때보다 화려한 새해의 시작

음력 1월 15일을 우리는 정월대보름이라 부른다. 올해 계묘년은 2월 5일이 정월대보름이고, 각 지차체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행사나 축제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것도 나에게는 딱히 의미 없는 하루였다. 올해 정월대보름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주 오래전, 2월경 부산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간 해운대에서 달집태우기를 하는 것을 보고 대충 친구들끼리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래"라고 말했던 것은 기억이 나지만, 이것마저 우리나라 명절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저 모래사장 위에서 자작자작 타들어가는 달집을 보며 그곳에서 파는 막걸리와 파전을 먹은 기억만 있을 뿐.


그러던 어느날, 2월 3일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쉬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뻥! 뻥! 하는 폭죽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린아이 같겠지만 서른이 넘어도 나에게 불꽃과 폭죽은 언제나 화려하고 설렘을 주는 것 중 하나다. 멀리서라도 불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황급히 베란다 문을 열고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뻥뻥, 소리만 들릴 뿐 떨어지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 몰래 축제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지역구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역시나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지금 이 폭죽소리 뭐죠? 어디서 행사하나요?'라는 질문이 보였고 바로 밑에 '정월대보름이라 옆에 옆 구에서 축제하나 봐요'라는 댓글을 보았다.


아. 정월대보름에 지역 축제를 여는구나.


갑자기 동한 마음에 지역구 홈페이지를 찾으니,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 우리 지역에서도 정월대보름 축제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웬일인지 전과는 다르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축제의 시간과 장소를 대충 훑어놓고 같이 갈 사람을 물색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년 하고 조금 넘었지만, 아직도 동네와 낯가리는 중이라 혼자서는 갈 용기가 없었다.


다행히 토요일 저녁 잠깐 시간이 된다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도 무슨 정월대보름 축제냐며 생소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역시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라며 웃고 나도 처음이지만 재밌을 것 같으니 일단 함께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축제 장소인 하천 하구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많은 인파들이 몰려있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다 보니,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쥐불놀이를 즐기는 아이들과 땅콩을 나눠주시는 분들, 웃고 떠드는 가족들까지 좁은 거리임에도 서로서로 안전을 지켜가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행사 시작 전까지 약 30분가량이 남아있었고, 방송에서는 곧이어 낙화놀이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낙화놀이를 이곳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가득했지만, 그저 축제가 전체적으로 잘 보이는 위쪽에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높이 뜬 보름날을 보며 가만히 소원도 빌었다. 올해는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좋겠다고.



어느새 장내의 소리가 조금 줄어들었고 낙화놀이가 시작되었다.



낙화놀이를 줄불놀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공중에 설치된 줄에 숯가루가 든 봉지를 여러 개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양쪽에서 불을 붙이면 그 불길이 줄을 타고 흘러 숯봉지에 옮겨 붙으면 불꽃이 줄을 따라 비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꽃비가 내리는 모습처럼 보여 낙화놀이라 부른다고 한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공중에서 흩날리는 줄불에 잠시 넋을 놓는다. 함안의 낙화놀이를 버킷리스트로 꼽는 사람들도 여럿 있던데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고요함과 동시에 희망찬 무언가로 가슴 속이 일렁이기도 한다.


물론, 주변 소리가 고요했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밝고 경쾌한 노원아리랑이 나와 축제의 흥을 돋우고 있었기에, 모두가 즐거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 흘러나오는 노원아리랑을 듣고 있노라면 그때의 설렘과 흥분이 또다시 일어난다. 우리 역시 마치 명창이라도 된 듯 노원아리랑을 연신 불러대며 축제를 즐겼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줄불의 장관이 정점을 이루었을 때, 높이 뜬 보름달과 한 컷 담아 놓았다. 물론 달만큼 높이 솟은 아파트들이 경관을 해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진짜 우리 삶의 한 장면인 것을. 마음에 담아두지도, 아쉬워하지도 않기로 했다.


숯이 거의 타들어가고, 자리를 좀 옮겨야겠다 생각해 하천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이번엔 달집태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정월대보름의 하이라이트는 달집태우기라고 하는 말이 들렸고, 운이 좋게 달집태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친구와 잔뜩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달집태우기는 볏짚을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태워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우리의 전통 풍속이다. 이 날은 지역 구민들이 직접 적은 소원을 달집에 매달았다고 한다.


본격적인 달집태우기 전, 행사를 준비해 준 구청장과 국회의원, 그리고 구민의 인사말이 진행되었다. 조금 지루할 뻔했지만, 축제가 진행되기까지 마음 쓰고 고생해 준 분들을 대표하는 인사말이기에 감사의 마음으로 들었다.


인사말이 줄어들고 달집태우기가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불을 누가 붙이는지 어떻게 붙이는지 집중하는 사이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온다! 온다!"




둥근 불덩이가 순식각에 달집 속으로 들어갔다. 그 불덩이가 달이고, 볏집을 높게 쌓은 것이 달집.

달이 달집에 들어가자마자 곳곳에서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풍물놀이의 소리는 더욱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앞으로 올 액운을 떨어트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벅차오르는 마음에 두 손을 모아 가슴 가까이 두고 있었다.  



생에 첫 정월대보름 축제, 친구 역시 이런 축제가 처음이라고 한다. 모두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미소가 뗘져 있는 걸 보니 이런 행사를 놓치고 살았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제부터는 매년 챙기게 될 것 같은데 같은 레퍼토리를 보겠지만, 그럼에도 새해를 잘 부탁한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친구 어머니가 싸준 정월대보름 절식을 차려 먹었다. 본가에 살았다면 이 맘 때쯤 할아버지 제사상으로 나오는 밥을 먹었을 것이다. 집에서 독립한 후 누군가 정월대보름이라고 오곡밥을 챙겨준 것은 처음이다. 찹쌀, 팥, 잡곡으로 만든 오곡밥 그리고 양념이 잘 배어든 나물들까지 먹고 나니 정말 제대로 된 정월대보름을 챙긴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정월대보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것, 이제 새해라는 것에 뭔가 의미부여를 하고 싶을 때 이 날을 찾으면 되겠다는 배움의 뿌듯함. 그리고 올해가 굉장히 의미 있는 하루하루로 가득 찰 것만 같은 기대까지.


이번 정월대보름, 뿌듯함과 설레는 마음을 달에 실어 보냈다.

작가의 이전글 달에 실어 보낸 마음, 정월대보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