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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25. 2019

정다운 사람처럼 / 박소란

토라짐에 대하여

정다운 사람처럼 / 박소란

화를 내는 것 굳게 팔짱을 끼고 성마른 등을 보이는 것

이제 하나의 심장을 받아 소용돌이치는 사람처럼 이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미안, 하면 눈물이 돈다 처음부터 미안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단지 미안만을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내민 손을 붙드는 것

비 갠 오후 성당 돌담길은 더없이 평온해
세상 마지막 인사인 듯

물기 번진 잎사귀를 매달고 걷는 것
바람이 살랑이고 슬며시 웃음이 고이고 잠시 잠깐 기도를 떠올리는 것

토라졌다 때마침 화를 푼 사람처럼
하늘의 표정은 맑고 사랑에 빠질 듯 자꾸만 찰랑거리고 모든 게 그만 괜찮아
괜찮아, 하면 눈물이 돈다

이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 이토록 정다운 사람처럼


어릴 적 나는 잘 토라지는 아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얼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듯도 하다. 아마도 나에겐 언어의 힘이 없었던 듯하다. 언어의 힘이 약해서 더더욱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언어를 믿지 못한다는 건 언어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의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다. 그러나 언어가 아니면 당신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믿음만은 믿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토라짐이라는 몸의 언어를 발명했던 건 아닌지.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표현하고 싶어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으니 당신이 나를 이해해 달라는 응석으로. 당신이 그대로 등 돌리고 떠나버리면 내가 먼저 사라질 듯한 무서움에. 그렇게 당신에게 배제되면 세상이 무너질 듯한 두려움에 나는 토라짐이라는 몸의 언어를 발명하고 당신에게 수시로 시그널을 보냈던 게 아닐까. 


언어 일반이 그러하듯 토라짐의 언어에도 규칙이 있다. "화를 내는 것 굳게 팔짱을 끼고 성마른 등을 보이는 것"은 토라짐의 어순이자 문법이다. 실은 화가 나지 않았지만 그런 척을 해야 한다. 토라짐은 반어법이기 때문이다. 토라짐의 언어 사용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나의 토라짐에 당신이 반응하는 시간은 짧고도 길다. 길고도 짧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인내하는 동안 토라짐의 태도와 뉘앙스를 유지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그걸 푸는 순간 토라짐은 무용해진다.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당신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까지. 나는 "처음부터 미안만을 기다려온 사람"이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마법의 단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 하나의 심장을 받아 소용돌이치는 사람처럼 이별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미안' 한 마디에 마음의 소나기가 그치고 세상은 평온을 회복한다. 그제야 바람의 살랑임이 느껴지고 "슬며시 웃음이 고이고",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잠시 잠깐 기도"한다.


몸의 언어인 토라짐을 완성하는 건 "괜찮아". "괜찮아"는 토라짐의 문장에 찍는 마침표.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토라짐의 문장은 역설의 가능성을 품는다. "괜찮아"를 말하지 않는 고집이 당신을 밀어내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꼭 "괜찮아"라고 화답해야 한다. "괜찮아, 하면 눈물이" 돈다. 당신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미안한 건 외려 나 자신임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뼛속 깊이 고마운 까닭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나의 말의 언어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토라짐은 습관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다. 여전히 언어로 당신에게 나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언어가 아니면 당신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임을 믿기에 나는 또 굳게 팔짱을 끼고 성마른 등을 내보일 것이다. 나는 이별을 잘 알아서 정다울 수 없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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