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May 20. 2019

슬픈 몸짓

일기

출퇴근에 이용하는 2003년식 스타렉스는 기름을 많이 먹는다. 자주 기름을 주다 보면 이 녀석이 한 끼니 얼마나 달리는지 스크루지처럼 민감해진다. 좋은 기름을 넣어도 어차피 구분을 못할 녀석이라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비슷한 가격에 기름을 파는 다른 주유소에 들렀는데, 연비에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같은 양을 넣고도 체감상 이틀은 더 달리는 듯했다. 구두쇠에게 이틀은 엄청난 차이였다. 그 후로 나는 그 주유소 단골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주유소 사장님은 너무 퉁명했던 것이다. 좋은 기름을 판다는 걸 알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내 차는 주유관이 직관이기 때문에 고속으로 주유하면 어느 시점에서 꼭 사레들리듯 기름을 뿜어낸다. 그렇게 뱉어내는 몇 방울의 기름이 아깝기도 하고 주유 뚜껑 근처에 기름이 묻는 것도 싫어서 '저속'으로 넣어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 말에 사장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내 딴에는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한 건데 너무하다 싶었다. 출근하는 아침부터 기분이 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속으로는 '뭐, 이런 주유소가 다 있어. 다시는 오나 봐라' 욕을 했지만, 나는 다음번에도 그 주유소를 찾았다. 한 끼에 무려 이틀을 더 달릴 수 있는 이점을 내 쪼잔함이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스물여덟부터 나는 주유소에서 일했다. 꾸준히 일한 건 아니고 일하다 돈이 모이면 훌쩍 떠나고, 빈털터리가 되면 다시 주유소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한군데 메이는 것을 싫어했고, 정처 없이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웬만한 주유소는 숙식을 제공했기에 그렇게 분방한 삶이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주유소에 일하는 배경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주유소에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주유원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했다.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그런 대우는 부당함에도 손님은 말할 것도 없었고 고용주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존칭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잘 모르는 사람 사이에 차리는 예의 정도를 바랐는데, 그것도 사치였나 보다. 사람들은 말을 너무 편하게 했고 명령조로 주문했고, 자신의 차 안에 있는 가장 더러운 것들을 주유원의 손에 아무렇게나 버렸다. 소통의 부재로 실수가 생기면 손님은 자신의 실수는 감추고 주유원의 부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큰 소리로 쌍욕을 하기 일쑤였다. 단지 주유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주유원은 그런 대접을 받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나는 감정 다툼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다치는 것은 결국 주유원의 마음뿐이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했고, 가장 빠른 해결책은 내 마음을 닫는 일뿐이었다. 상대가 반말을 하든지 말든지, 욕을 하든지 말든지, 부당한 요구를 하든지 말든지 그러려니 하고 내 할 일만을 하며, 그 아픈 순간을 쓴 약처럼 삼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공장에서 돌아가는 로버트 팔처럼 감정 없이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실은 그게 너무 아픈 것이다. 내가 물건처럼 되는 것. 주유원을 인간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짐승은 호의는 금세 잊기 마련이고,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악의는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만 나는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예의 주유소 사장님의 퉁명함을 그냥 넘길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역자시지의 심정도 한몫했던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나는 그 주유소를 찾았다. 주유기 옆에 주차를 하자 사장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사장님의 퉁명함을 몇 번 겪은 지라, 이번에도 무반응 혹은 역반응을 예상하면서 천천히 주유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역시 사장님에게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전에 같은 강렬한 레이저는 날아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결제할 카드를 내미는데, 사장님의 왼손이 그걸 받으려고 뻗어오다가 중간에서 급작스럽게 오른손이 합세해 공손한 두 손으로 변모했다. 사장님의 퉁명한 표정과 너무도 대비되는 그 찰나의 동작은 마치 예기지 못한 어떤 공격을 사전에 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고개를 쳐들고 주위를 살피는 초식동물의 기계적인 버릇 같았다. 내 몸도 기억하는 슬픈 몸짓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모순 - 양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