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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나 Sep 28. 2018

모순 - 양귀자

사흘에 한두 잔이나 마시던 믹스커피를 요즘엔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신다. 얼마 전에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문했고 오늘 도착했다. 스마트폰에 연결해, 전에는 잘 안 듣던 음악을 유튜브로 수시로 찾아 듣는다. 보컬의 육성과 노래의 음표들이 좁은 방안에 날린다. 여수에 다녀온 이후의 작은 변화들이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입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들며 나를 이루고 또 나를 해체한다. 그러니 나는 어쩌면 내가 아니다. 나는 나에게 밀려온 모든 것들이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포말들을 빠짐없이 언급해야 할지 모른다. 내가 내가 아닌 것. 이것은 존재의 가장 큰 모순이다.




이 모순에 울부짖는 한 인간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안진진. 외자의 진지함을 피하기 위해 한자 참 진을 두 번이나 쓰고 성씨 '안'이 그것을 부정하는 형국. 꼭 자신의 이름처럼 살아온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에 휩싸인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서 주변인들을 끌어와 분석하는 것은 바로 그 존재의 모순 때문인 듯하다.


모순은 익히 알려졌듯이 중국의 고사에서 연유한다.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 여기서 생겨나는 논리적 궁지, 아포리아를 설명하기 위해 진진은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결국 논리적 길없음에 도달한다.




모순을 극복하는 법은 어쩌면 모순의 정의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닐까. 각종 이론과 법칙을 끌어와 어느 창이, 어느 방패가 견고한지 따지는 '논리적'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창과 방패들을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실제로 부딪혀 보는 것. 진진이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살면서 많은 모순을 겪는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가장 큰 모순이다. 모순의 정의대로라면 모순은 현실로 나타날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모순들은 실제로 일어난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부조리'라고 부르는 현상의 실체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 부조리를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손에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창이,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방패가 들려 있을 것이다. 빛을 받아 번쩍 번쩍 광이 나는 모와 순. 그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인생일 것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글의 저적권은 필자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류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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