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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n 04. 2019

파랑

트린코말리, 스리랑카, 2016.02.

파랑이라곤 없는 잔잔한 연못에 한 마리 지친 잠자리가 날아와 내려앉는 찰나의 파문은 연못 안의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다. 호기심 깃든 눈빛과 놀라움의 낯빛을 한 물고기들은 난생처음 보는 잠자리를 금방 사랑하게 되었다. 물고기들은 물밖의 자유로운 삶,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날개, 그리고 어디든 볼 수 있는 너른 시야의 눈을 특히 사랑했다.


물고기들은 잠자리를 부러워했지만 그건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잠자리가 보기에 물속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다. 자신처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광활한 허공에서 온종일 고단한 날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물고기들이 부러워하는 비행도 자신에겐 단지 중력, 그리고 바람과의 지난한 사투일 뿐인데, 물고기들의 유영은 그저 물의 흐름에 편하게 편승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많은 곳을 동시에 보는 시력도 자신에겐 불필요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를 세심히, 오래도록 바라보는 눈이라고 잠자리는 늘 생각해온 터였다.


잠자리가 가진 것 중 물고기들이 가장 부러워한 건 저 창공을 마음껏 비상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알지 못했다. 잠자리에게는 한 번의, 하나의 계절밖에 없음을. 그 자유 또한 잠자리에겐 다만 막막하고 버거운 생의 무게일 뿐임을. 잠자리에겐 작은 연못의 유유자적하고 부족함 없는 생활이 차라리 나아 보였다. 물고기들은 자신들에겐 자유가 없다고 했지만 잠자리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자유로웠다. 더 큰 자유에 대한 욕심만 없다면,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만 없다면, 물고기들은 잠자리가 만나온 어떤 존재들보다도 자유로운 존재였다. 자신을 구속하는 건 어쩌면 연못이 아니었다. 그들 자신이었다. 스스로를 구속하고서 자유를 바라고 있었다. 잠자리는 생각했다. 만약 물고기들의 믿음처럼 자신이 정말 자유로운 존재라면 세상에 자유라는 건 없는 것이라고. 환상이라고.


수면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운을 회복한 잠자리는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연못의 물고기들은 슬프다고 했다. 잠자리가 그리울 거라고 했다. 잠자리는 그 말이 좋았다. 자신과의 이별을 슬퍼한다는 건 그 슬픔의 부피만큼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것이므로. 하지만 잠자리는 또한 알았다.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 물고기들은 잠자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잠자리라는 허울, 물고기들은 될 수 없는, 그래서 동경하는, 종의 다름을, 다른 삶을 사랑했던 것이다. 자신이 아닌 어떤 잠자리가 왔어도, 심지어 날개를 가진 다른 종, 이를테면 나비 같은 존재가 날아왔어도 물고기들은 그들과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잠자리는 생각했다. 단지 부질없는 선망일 뿐이라고.


떠나기 위해 잠자리가 날아올랐다. 수면에 처음 내려앉을 때와 같은 파문이 일렁였다. 작은 기척에 연못 속의 물고기들이 한 데 모였다. 아쉬움 깃든 눈빛 슬픈 낯빛을 한 물고기들은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라고. 다음에 또 오라고. 얕은 공중에서 잠자리도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으라고. 언젠가 또 보자고. 그러나 잠자리는 알았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언젠가 또 보자고.


잠자리는 공중으로 날아가고 물고기는 수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파랑이 이는 수면으로 작별하는 말들의 여운만 바람에 윤슬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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