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시간되니 할아버지 상 받으신댄다. 내일.. 약속이 없는게 분명했지만, 약간의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알겠어 내가 갈게. 전날 퇴근후 꽃집에 들려 꽃도 미리 사놨다. 할아버지가 무슨 상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6.25 참전유공자이시니 뜬금없이 상을 받는다는게 이상하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를 태우고 상을 받는 대강당에 들어서야 알았다. 크게 걸린 6.25 전쟁 72주년 현수만을 보고서야 비로소.
매번 갈망하던 주말의 시작 토요일인줄 알았던 오늘이 6.25라는 것을 이곳에 들어서야 알았다는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만 72주년이라니. 72년의 반도 못 산 나였다. 학도병으로 18살에 전쟁에 참여했다고하더라도 이미 백발의 90세가 될정도로 시간이 흘렀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크게 다가왔다.
주위를 잠깐 둘러봐도 할아버지처럼 모자를 쓴 할아버지들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내또래는 커녕 내 엄마 또래도 찾기 힘들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매년 있는 행사여서 그럴까. 40분일찍 도착한 행사는 40분만에 끝났다. 그중 15분은 방문한 내빈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상을 받기 위해 나오는 그들의 몸짓은 너무도 느리고 고장난 로봇처럼 삐그덕 거렸다. 마이크에 대고 강당안을 울려퍼지는 소리도 듣기 힘들어 도와주는 사람이 일일이 그들의 몸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자리를 챙겼다. 상패를 거꾸로 든사람, 자꾸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사람, 듣지 못해 자기차례인지 모르는 사람, 72년이라는 세월을 체감하게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찰칵찰칵 몇번의 후레쉬 터지는 소리 후에 할아버지는 방금 받은 명패를 내려놓고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4칸의 계단을 내려오기 위해서.
나는 전쟁영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도 전쟁을, 전쟁을 하게 만든 선택들을 좋아하지 않는거겠지만, 전쟁후의 영웅화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어렸을적 존레논의 imagine을 들으며, 그래 국가가 없으면 이런일도 없었을텐데 하며 공감했던 나였다. 그 가사에서 만난 이상주의자라는 단어를 ‘나’라고 정의 내린적도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중 그 누가 전쟁에 참여하기를 갈망하고 선택했을까. 떠밀리듯 그저 그때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총을 쥘 수 밖에없었다. 그들에게 선택권 없는 잔혹한 전쟁을 치루게 한 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남은 몇몇 사람들을 영웅시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적 없는데, 따지고보면 어쨌든 그들도 살생에 참여한 것인데. 이 일련의 과정들이 참혹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과정속에서 나타나는게 영웅이라면 영웅없는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오늘 그들만이 보내주는 박수로 치뤄진 짧디 짧은 행사를 보면서,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마음 한켠에서 피어올랐다. 전쟁영웅을 추켜세우는 것도 씁쓸하지만, 이런 대우도 씁쓸하다. 결국 이렇게 될거면서. 영웅어쩌고 하지만 결국은 그 시대를 살아온 자들만이 부대끼며 서로를 보듬게 될거면서.
감사하고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겐 그저 머나먼 옛날 이야기같은 일이라 그럴까. 그들의 삶 속에선 뗄레야 뗄수없는 사건과 기억들일텐데 그 사건과 동떨어진 우리는 그저 가끔 그때 태어난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느낄뿐. 그러니까 결국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도망치고 싶고 두려웠던 곳에 떠밀듯 보내 그중 살아 돌아온자들에게 이것저것 선심쓰듯 칭호를 붙이지만 이것조차 결국 색이바라고 희미해진다. 새모자를 쓴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처럼 지팡이에 의지하는 다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