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다
총량의 법칙. 모든 것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말로, 우스개소리로 지랄 총량의 법칙, 또라이 총량의 법칙 으로 비유되곤한다.
지금 맘껏 지랄을 하는 시기가 지나면 남은 날들은 평화로울 것이라는 의미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또라이가 무조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를 짧은 단어로 임팩트있게 전달한다.
스물넷 이 글자만으로 싱그럽던 그때 난 한창 짝사랑의 늪에 빠져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쩔줄 모르며, 세상 모든 짝사랑과 실연을 노래하는 음악이 다 내얘기 같을때 우연히 내 플레이리스트에 실린 노래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제목은 사랑이었다. 누군가의 추천 곡이었는지 그때당시 순위에 있던 곡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비슷하게 절절한 노래들 사이에서 그 노래를 듣고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슬픈 노래라니 이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난, 이렇게 슬픈 사랑을 하고 있는건가. 반복재생 버튼을 누르고 한동안은 그 노래만 들었다. 질리도록 그노래만 듣고 그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울었다가 위로받다가 울었다.
짝사랑, 그 말 자체로 불완전한 사랑처럼 느껴졌기에 쓸쓸했던 내마음은 사랑이었다 라고 반복되는 구절에서 위로를 받았나보다. 이것도 사랑임을, 아무도 몰라주는 혼자만의 사랑이어도 사랑이 맞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끌렸던걸까.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걸까. 한 일주일 아니다 한 이주정도는 그노래만 계속 들었다. 노래를 듣지 않을때도 노래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후 짝사랑은 희미해졌고 더이상 그게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조차 중요하지 않았을때 그노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키워나가고 오랜 시간동안 그노래를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기억을 못해서 일수도 있지만 듣고싶다는 생각이 든적이 없었다. 아마 그 노래를 듣는 총량을 내가 이미 다 써버려서 그런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만에 그노래를 들었을때 그때 그시절이 떠오르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가사를 흥얼거렸지만 한 번 뿐이었다. 거의 모든 총량을 그때 당시에 쏟아 부었던게 분명하다.
그럼 사랑에도 총량이 있을까. 불같던 연애를 했던 그들이 일찍 헤어진 이유도 그 총량을 너무 빨리 쏟아 부었기 때문일까. 평생에 걸쳐 나누며 쓴다면 우린 더 오랫동안 평생토록 사랑할수 있을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양을 쏟아부은것 같아 불안한 밤도 있었다. 총량이 얼만큼 남았을까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너를 보면 생각할틈 없이 와락 붓게되는 내 마음이다. 이따금 그렇게 붓고 흠뻑젖어든 너를 볼때면, 내가 너를 사랑할 총량이 바닥이 보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붓다가 갑자기 누구도 예상치못하게 바닥을 발견하게 되면 내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정도의 양을 발견하게 되면… 불안감에 휩싸일때 너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랑의 총량은 너가 헤아릴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고, 넌 이미 헤아릴수 없는 사랑을 주었고 그럼에도 헤아릴수 없는 만큼의 사랑이 남았다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진뒤 내가 다시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총량의 법칙을 떠올리고 그럴수 없을 것 같아 끝없는 나락에 빠지곤 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또 누군가에게 또 사랑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분명 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거의 없거나 바닥을 드러낸 사랑이었을텐데, 이번이 진짜 사랑인것처럼 마지막 사랑인것처럼 어딘가로부터 샘솟는 사랑을 마구 퍼붓는다 퍼부어진다. 그럼 내가 그때 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분명 내 사랑의 총량은 그때 다한것 같았는데 그사람에게 모두 주어진것 같았는데 다시 끝없는 사랑을 베풀수 있을것 같다. 이미 충분한것 같다.
사랑의 총량은 다시 가없이 채워지는구나. 그 전은 사랑이 아니었고 지금이 진짜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그것도 사랑이었고 지금도 사랑이다. 사랑의 총량은 그래서 과거도 현재도 찰랑찰랑거리며 언제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질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얼마나 붓길 원하는지 흠뻑 젖길 원하는지의 차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