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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ug 25. 2018

끝없는 어둠 속 끝없이 소중한 것들에게






언제나 가을은 이렇게 찾아온다.


밤에 잠이 드는 것조차 힘겨울 때, 이제 그만 좀 하자 라는 생각으로 울컥할 때도 멀어보였던 가을이, 여느 때와 같은 저녁날, 열린 문틈으로 훅 하고 다가온다. 눅눅하고 무거운 바람이 아닌 산뜻한 바람으로, 예상치 못한 순간 기분좋은 내음으로 다가온다. 이번 여름이 특히 더웠던 것 처럼 특히 간절하게 지금을 기다렸다.


꼭꼭 닫아두었던 창문을 오랜만에 열었다. 에어컨이 아닌 창문을 머리 맡에 두고 두 눈을 감았다. 눅눅하고 무거운 바람이 아닌, 가볍고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며 볼에 와 닿는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그저 머나먼 어둠속에서부터 다가오는 이 시원한 바람이 날 어디론가 데려가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빼곤 너무도 고요한 밤 덕분인지, 잠에 들지 않고 상상에 들었다. 평소엔 끝없는 상상을 하려해도 시덥잖은 공상으로 끝나거나,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어둠과 정적뿐이고, 내가 상상하고 싶은 것도 오직 그 것들로 가득찬 곳이라, 방해없이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있는 유일한 공간인 상상을.



상상 속 그 곳도 아득한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밤이 빈 틈없이 빼곡하게 내려앉아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 곳에선 별들 만이 유일한 빛 이라는 점 뿐이다. 눈을 감는 것 만으로도 이미 그 곳에 닿을 수 있었다. 정말로 바람이 날 그 곳으로 이끌었다. 다시 눈을 뜨면 별빛 대신 미처 꺼지지 못한 도시의 불빛이 나를 반기겠지만. 눈을 감은 한 그 곳의 하늘이 지금의 하늘이었다.


멀리 들판이 펼쳐지고 드문드문 나무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들판이 끝나는 곳에선 산이 시작되고, 하늘은 수놓인 별빛들로 반짝이는 그런 풍경을 상상했다.


그러자 그 끝없는 밤하늘 속에서, 끝없을 것 같았던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런 세세한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다. 이 풍경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나 자신과 그런 내 자신을 품고있는 이 지구와, 그런 지구를 품은 우주 뿐이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구는 얼마나 자주 이런 ‘나’들을 만나게 되는건지, 우주는 얼마나 광할하고, 그런 우주를 만난다는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했다. 마치 지금 이 곳에 나와 우주만 존재하는 것 처럼 생각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 아니 '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나를 괴롭히며 따라다니던 생각들이 아주 사소한 것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주 사소한 것들을 중요한 것으로 포장하고,
그것들에 얽매이고,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끝없이 광할한 것과 끝없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되곤했다.





다시 눈을 뜨면, 난 또 내 앞에 놓인 ‘중요한’ 것 들에 종종거리고 불안해하겠지만. 다시 이런 밤이 찾아와 어둠 속에 묻혀있던 진짜 ‘중요한’것 들을 찾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그런 밤을 청해본다.










잘 자길. 어려우면서 단순하고, 끝없으면서 짧고, 사소하면서 중요한 것들 속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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