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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Feb 12. 2020

나의 자리

주어진 환경에 익숙해지기

매일 같은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아침 8시에 수업이 있는 목, 금을 제외하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도 얼추 비슷하다.


20대의 나도 그랬듯 다른 학생들은 다들 저녁형 인간인지 아침 일찍부터 학교와서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2학기가 시작하고 나는 더더욱 새벽닭이 되어 저녁 일찍 자고 새벽 세네시에 주섬주섬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고, 아이들이 깨면 혼쭐을 빼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학교로 곧장 온다. 학교에 도착해, 물을 끓이고,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이번주는 개강 3주차인데, 지난 주말까지 스트레스의 정점을 찍고서 월요일에 한 고비가 꺾였다. 몰아치는 공부에 과제에 허우적대다가 가족들을 내팽겨두고 주말까지 공부를 했는데도 결국 확률론 과제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얼마나 허탈한지 억울한 마음까지 들어서 일요일 밤에는 손이 덜덜 떨렸다. 지난주에 배운 스택으로 비유하자면 끊임 없이 올라오는 양을 하나씩 해서 pop을 해도 새로 push되는 게 더 빨라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다시 확률론 제출을 다음주까지 해야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어차피 꼼꼼하게 모든 과목에 모든 걸 다 알고 한다는 게 내 역량 밖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그 요령을 깨치는 게 이번 주 과제일 것 같다.


나랑 네 과목 다 같이 듣기로 했던 친구는 결국 확률론 선형대수 수학 과목을 드랍하고 나머지 세 과목만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시간이 너무 없어서 다 못하겠다라고 하던데, 다른 이의 삶을 내 마음대로 재단한다는 게 어리석은 걸 알면서도 두 아이 육아하면서 공부하느라 아둥바둥하는 내 앞에서 시간을 논한다는 게 씁쓸했다. 그만큼 생각보다 이번 학기 과목들이 하나같이 힘들어서 세 과목만 듣는 사람들도 꽤 있고 그렇다. 난 엄마가 두 달간 도와주러 오시는 이번 학기만큼 편한(?) 학기가 없을 것 같아서 어쨌든 힘든 네 과목 다 해보려고 한다.


힘들지만 어제 누구와 잠깐 만나 얘기했듯, 둘째 아이를 낳고 이나라에서 도대체 내가 어떤 쓰임이 있을까 생각에 우울했던 2018년도에 비해서 지금은 천국이다. 매일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게 (그것 때문에 내가 해야할 다른 일들, 살림을 내팽겨둔다는 게 문제지만서도) 얼마나 큰 의미인지. 지금도 바쁜 엄마인 점이 미안하지만, 내년에 좀 더 편하고 좋은 직장(소위 대기업)을 잡는 게 장기적으로 봐서 아이들에게도 좋을 일이고, 또 아이들이 크면 지금 이순간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엄마아빠를 자랑스러워해줄 거란 끝도 밑도 없는 자부심도 없지 않다.


타고난 머리가 그렇게 좋다고도 할 수 없지만, 아이 둘 낳고 나니 그나마의 머리도 나빠진 것 같다. 거기다 새로운 걸 채워넣으려니 쉽진 않다. 어떤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돼서 찾아보니, 이게 미적분이라 하고, 문과라 미적분을 안 배웠던 문과사람은 고등학교 미적분부터 찾아봐야 하는 굴레다. 공부가 어렵다 하니, 우리 엄마 왈, "너는 치매는 안 걸리겠다." 그러게... 첫 학기는 오히려 진짜 몇 년 육아하면서 안 쓰던 공부/일머리를 깨우느라 몸도 마음도 초긴장 상태여서 몸이 더 아프고 피곤했던 것 같은데, 그나마 한 번 해봤다고 이번 학기는 이런 강도가 좀 익숙해진 듯한 느낌도 든다. 만성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만.


갑자기 오늘은 글부터 써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잡담을 쓰느라 내 소중한 20분을 허비했다. 이제 다시 오늘 공부 시작.


내 자리가 있는 난 행운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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