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의 기본
심리극을 자주 보면 “이번 주인공은 어떤 어려움을 말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심리극에서는 주인공이 말하는 마음의 세계를 즉흥적으로 가다 보니 심리극 디렉터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는 주인공의 삶의 문제를 이해하는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심리극 디렉터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집단원과 신뢰를 바탕으로 응집력을 촉진하면서 주인공의 삶의 문제를 인식하며 미해결 된 주제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안내합니다. 이처럼 심리극 디렉터는 그 역할이 다양하고 수련에도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또한 심리극 디렉터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행하는 사람(최헌진, 2003)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행(修行)은 사전적 의미로 행실, 학문, 기예 따위를 닦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행실, 학문, 기예는 실지로 드러나는 행동이며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고 또는 그런 지식을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를 말합니다.
심리극 디렉터가 무대 위에서 보이는 역할은 켈러먼(Kellermann, 1992)에 따르면 분석가, 제작가, 치료자, 집단 리더의 역할이 있는데 이러한 역할은 최소한의 연습을 많이 하여 능숙하게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심리극 디렉터로서 심리극이 기술과 재주에서 더 나아가 예술로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물음의 시작을 심리극 디렉터의 분석가 역할로 생각해봅시다.
심리극 디렉터는 분석가의 역할을 하면서 주인공의 마음의 세계를 만납니다. 심리극 디렉터로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곳으로 안내해야 할까요? 심리극 디렉터는 분석가 역할을 하면서 주인공과 집단원의 마음의 여행 지도를 준비하게 됩니다. 바로 마음의 여행지도 즉, 사례개념화입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사례개념화적인 관점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 호소하는 문제가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주고 있는지, 그 어려움이 언제부터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찾아 나섭니다. 그 여행의 길이 언어적인 방식이 아닌 행위적인 방식으로 지금-여기에서 경험하도록 촉진하고 안내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세계는 여섯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인지, 정서, 행동, 관계, 신체, 영성입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수련과정에서 마음의 영역을 학습하고 이해하며 실천합니다. 심리극 디렉터로 수련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심리학(psychology)’입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분석가 역할을 할 때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주인공들의 마음의 어려움을 ‘관계'를 통해 발견합니다. 양육자와의 관계(애착이론), 형제자매의 관계(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배우자와의 관계(이마고 부부관계 치료), 가족관계(가족치료이론), 자녀와의 관계(대상관계이론, 내면아이치료) 등 관계 주제 안에서의 이론과 실제의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응용심리학의 이론적 이해가 주인공의 안내에 필수적인 지도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른 측면으로는 마음의 어려움은 상처를 통해 발견됩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합니다. 이러한 외상은 우연히 일어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일어날지 모르지만 우연히 다양한 형태로 일어납니다. 외상은 대인관계 내에서 경험하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중요한 애착 대상에게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제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의 감정을 만납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그 감정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탐색해봅니다. 어떤 주인공이 말합니다. "저는 하루 내내 가족들에게 화만 내고 있습니다.” 심리 도식 치료의 관점으로 사례개념화를 해본다면 "쉽게 분노하는 사람은 상처 받은 사람이며, 자존감이 취약한 사람은 쉽게 분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인해 2차 감정인 ‘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그때 그 순간 삶 속에서 표현하지 못한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심리극 디렉터는 이때 주인공이 과거 결핍되어 있는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그 감정을 안전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극 디렉터가 분석가 역할로서 문제의 기원에 대한 가정(hypothesis)과 배경, 치료적 안전망, 치료적 전략 없이 심리극을 진행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만큼 심리극 디렉팅 하는 행위가 위험하고 도전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심리극을 마음의 수술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어떤 심리극 디렉터는 치료적 가정(hypothesis)과 동의 없이 무작정 ‘바타카(batakas)’라고 불리는 몽둥이를 주인공에게 의자를 때리도록 하거나, 주인공 몸 위로 여러 명이 올라가 과도하게 누르게 하는 기법들을 사용합니다.
이는 주인공에게 외상의 대상을 갑작스럽게 떠오르게 하고 적절한 안정망 없이 감정을 분출하도록 하는 것은 준비 없이 과거 기억을 재현하게 합니다. 집단치료 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Group Psychotherapy) 소속이며 오랜 기간 동안 외상치료를 연구하고 실천해온 사이코드라마 TEP인 케이트 허딘스 박사(kate hudgins)는 그녀의 블로그(https://c11.kr/8sm9)에서 90년대 이후로 바타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한 내용도 있습니다.
심리극 디렉터로서 문제를 분석하는 단계에서 치료적 가정(hypothesis)이 없다는 것은 주인공의 복지에 반하는 윤리적이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심리극 디렉터는 심리극 디렉터에게 있어 이론적 접근을 통해 심리극을 진행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발성과 창조성을 제한하는 이론가로서의 행위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봅니다. 모레노가 말하는 자발성과 창조성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L.Moreno)가 주장한 역할 이론과 자발성 원리와 더불어 최신의 심리 치료적 이론과 실제는 양적, 질적 근거중심의 실천, 윤리적으로 내담자들의 복지와 안전한 치료적 경험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안전한 심리극, 주인공과 집단원의 복지와 윤리에 기반을 두는 심리극을 진행한다는 저의 주장에 이러한 심리극은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다른 측면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저는 2016년 7월 한국에서 마샤 카프(Marcia Karp)가 심리극을 진행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 집단원이 그녀의 심리극을 보면서 “당신의 심리극은 마치 강물처럼 집단 안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2005년 국내에서 번역된 '심리극의 세계’에서도 마샤카프는 디렉터의 역할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샤카프는 “심리극 디렉터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상호 신뢰가 생기고 사랑과 배려가 흐르며 ‘함께 하는 것’이 치유 과정의 창조성을 가져온다고 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심리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주인공을 중심으로 두고, 그가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며, 주인공과 집단원의 욕구를 강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촉진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극 디렉터는 분석가 역할 외에 제작자, 치료자, 집단리더 역할이 녹아 예술, 과학, 창조성, 심리치료가 혼합된 하나의 예술로서 아름다운 심리극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