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낯선 일상
1
계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혹여 길을 잘못 알려준 건 아닐까, 도착지를 잘못 검색한 건 아닐까 하고 애꿎은 길 찾기 앱만 몇 번이고 새로고침을 했다. 그러도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로드뷰로 버스 타는 곳, 내리는 곳 사진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낯선 자리에 앉고 나니 실감이 났다. 첫 출근날임을.
처음 시작할 땐 이런 모범생이 없다 싶을 만큼 성실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타고난 덤벙쟁이기에 난생처음 접하는 일을 시작할 땐 극도로 긴장하는 편이다.
모든 준비물을 다 챙겨서 나가다가도 신발끈이 제대로 묶이지 않아 넘어지기도 했으니, 문 밖을 나서기 전에 몇 번이고 점검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의 처음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를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난 내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일 뿐, 본성은 익숙해지면서부터 나타난다.
반복 학습으로 몸속 깊숙하게 익숙해지면 나태한 진짜 '나'가 뇌를 지배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40분 일찍 오던 6월이나, 10분 남긴 채 헐레벌떡 뛰어오는 10월의 나를 언제나 한결같이 대하는 대표님은 특별한 감정변화가 없는 탁월한 관리자형이다. 사소한 것까지 다 신경 쓰는 신경쇠약형 나란 인간이 4개월이란 시간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런 대표님 밑에서 일할 수 있었어서 일지 모른다.
3~4개월이면 나태한 본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덜렁덜렁 실수 투성이인 난 처음에는 성실하게 메모도 하고 녹음도 하고, 매뉴얼도 만들었다.
이제는 한 손엔 아이스커피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매일 하는 업무 같은 경우엔, 거의 무엇을 누르고 보고 있는지 모를 만큼 무의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딸깍 딸깍 만 할 뿐이다.
2
어째서인지 이런 행태는(?) 흡사 어린 시절 생일선물을 대하던 내 모습과 비슷하다.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엔 평소 갖고 싶었던 선물을 손에 넣는 소중한 날이기도 했다. 늘 동생들과 물건을 나눠 써야 했던 내게 생일 선물만큼은 뺏기고 싶지 않은 애착의 물건들이었다.
책상 서랍 가장 아래칸에는 제일 아끼는 물건들은 꽁꽁 숨겨두는 비밀 금고였었는데, 생일날 받은 선물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심지어 까먹고 지내다, 다음 생일에 발견해 포장을 뜯어본 선물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싶다.
영리한 둘째 여동생은 소중한 물건들이 개봉된 후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녀는 일주일 즈음이면 새 선물에 대한 내 애정이 차갑게 식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늘 처음 그 순간이 지나가면 시들해져 버렸다. 물건마저도.
요즘 들어서 시들해진 선물 선물 대하듯 내 일과 환경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많은 걸 배려해 주는 직장, 거기다가 과중한 업무도, 야근도 없어 평화롭게 일하고 있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날 선 피드백을 받으며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게임 기획자로 지내던 날들에 비해 대표님과 동료들은 결과물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기까지 하다.
이런 최고의 직장에서 삐뚤어진 내 뇌는 감사함 대신 무료함을 느끼고 있으니, 고장 난 게 틀림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늘 먹던 음식, 가던 카페, 늘 하는 운동, 늘 만나는 친구들.
평생을 정해진 범주안에서 움직이는 주제에 그 안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건 뭐람
3. 늘 곁에 있다는 착각
한 날은 기획 회의 중 주제를 읽는데, 글이 낱말이 되어 한 글자 한 글자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일하기 싫어서 미친 건가 싶어, 다시 보는데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내게 유일한 재주가 바로 글을 읽고 핵심 내용을 찾아내는 거였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문득 불안해졌다.
"익숙해져서 대충대충 대하는 못난 습관 때문에 본래 할 수 있던 것조차 앗아가는 건 아닐까."
이젠 따끔하다 못한 쓰라리던 혹독한 평가를 하던 동료는 지금 내 옆에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 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지.
한 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잘 냈다고, 지금까지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었던가.
요즘 하루를 낭비했다고 생각한 날엔 집에서 키우는 달퐁이(달팽이 애칭)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새끼손톱만 한 사이즈인 이 친구는 마트에서 산 상추에 딸려왔는데,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도 살아난 대단한 녀석이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 상추와 함께 작은 집을 만들어준 뒤로 어찌어찌 반려 달팽이가 되었다.
상추를 갈아줄 때, 보면 숨구멍을 뚫은 비닐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달퐁이를 볼 수 있는데,
그저 거꾸로 달린 게 힘겨워보여 저 아래 상추잎 위에 살포시 이동시켜 준다.
그러면 몇 시간 뒤에 기어코 떼어냈던 천장 그 자리에 다시 매달려 있다.
4
바닥 제일 깊숙한 곳에 데려놔도 기어코 위로 올라오는 달퐁이를 보고, 알 수 없는 묘한 자극을 받아(?)
일요일 나태 루틴을 깨고 밖을 나왔다.
원래는 출근 전 날, 일요일엔 체력을 비축한다는 명분으로 쇼파에 널브러져 있었어 하나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실은 결혼 후 겁쟁이가 되어 남편 없이는 혼자 동네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인근 동네 카페까지 나온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5분 거리의 스타벅스를 간 게 전부였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챙겨서 처음 타보는 버스, 그리고 처음 와보는 카페에 도착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직한 뒤로는 전혀 쓰지 않았던 탓에, 글을 쓰고 있으면서 내가 지금 무얼 쓰고 있었는지 헷갈린다.
어쩌면 서투른 글솜씨로 다시 브런치를 켠 이유는, 익숙해져 버린 내일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아닐까.
밑바닥 상추 잎에서부터 멀디 먼 천장으로 기어오르는 달팽이처럼 조금씩 스스로 다른 변화를 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