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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Oct 06. 2024

늘 하던 거, 그거 말고.   

오랜만에 찾은 낯선 일상 

1  

계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혹여 길을 잘못 알려준 건 아닐까, 도착지를 잘못 검색한 건 아닐까 하고 애꿎은 길 찾기 앱만 몇 번이고 새로고침을 했다. 그러도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로드뷰로 버스 타는 곳, 내리는 곳 사진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낯선 자리에 앉고 나니 실감이 났다. 첫 출근날임을.     

    

처음 시작할 땐 이런 모범생이 없다 싶을 만큼 성실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타고난 덤벙쟁이기에 난생처음 접하는 일을 시작할 땐 극도로 긴장하는 편이다. 

모든 준비물을 다 챙겨서 나가다가도 신발끈이 제대로 묶이지 않아 넘어지기도 했으니, 문 밖을 나서기 전에 몇 번이고 점검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의 처음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를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난 내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일 뿐, 본성은 익숙해지면서부터 나타난다.

반복 학습으로 몸속 깊숙하게 익숙해지면 나태한 진짜 '나'가 뇌를 지배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40분 일찍 오던 6월이나, 10분 남긴 채 헐레벌떡 뛰어오는 10월의 나를 언제나 한결같이 대하는 대표님은 특별한 감정변화가 없는 탁월한 관리자형이다. 사소한 것까지 다 신경 쓰는 신경쇠약형 나란 인간이 4개월이란 시간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런 대표님 밑에서 일할 수 있었어서 일지 모른다. 


3~4개월이면 나태한 본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덜렁덜렁 실수 투성이인 난 처음에는 성실하게 메모도 하고 녹음도 하고, 매뉴얼도 만들었다. 

이제는 한 손엔 아이스커피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매일 하는 업무 같은 경우엔, 거의 무엇을 누르고 보고 있는지 모를 만큼 무의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딸깍 딸깍 만 할 뿐이다.  

 

  

2

어째서인지 이런 행태는(?) 흡사 어린 시절 생일선물을 대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엔 평소 갖고 싶었던 선물을 손에 넣는 소중한 날이기도 했다. 늘 동생들과 물건을 나눠 써야 했던 내게 생일 선물만큼은 뺏기고 싶지 않은 애착의 물건들이었다.

책상 서랍 가장 아래칸에는 제일 아끼는 물건들은 꽁꽁 숨겨두는 비밀 금고였었는데, 생일날 받은 선물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심지어 까먹고 지내다, 다음 생일에 발견해 포장을 뜯어본 선물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싶다. 


영리한 둘째 여동생은 소중한 물건들이 개봉된 후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녀는 일주일 즈음이면 새 선물에 대한 내 애정이 차갑게 식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늘  처음 그 순간이  지나가면 시들해져 버렸다. 물건마저도.    


요즘 들어서 시들해진 선물 선물 대하듯 내 일과 환경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많은 걸 배려해 주는 직장, 거기다가 과중한 업무도, 야근도 없어 평화롭게 일하고 있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날 선 피드백을 받으며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게임 기획자로 지내던 날들에 비해 대표님과 동료들은 결과물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기까지 하다. 


이런 최고의 직장에서 삐뚤어진 내 뇌는 감사함 대신 무료함을 느끼고 있으니, 고장 난 게 틀림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먹던 음식, 가던 카페, 하는 운동, 만나는 친구들.

평생을 정해진 범주안에서 움직이는 주제에 그 안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건 뭐람


3. 곁에 있다는 착각 

한 날은 기획 회의 중 주제를 읽는데, 글이 낱말이 되어 한 글자 한 글자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일하기 싫어서 미친 건가 싶어, 다시 보는데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뛰어나게 잘하는 하나 없는 내게 유일한 재주가 바로 글을 읽고 핵심 내용을 찾아내는 거였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되는 아닌가 싶어 문득 불안해졌다. 


"익숙해져서 대충대충 대하는 못난 습관 때문에 본래 할 수 있던 것조차 앗아가는 건 아닐까."


이젠  따끔하다 못한 쓰라리던 혹독한 평가를 하던 동료는 지금 내 옆에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 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지.  

 한 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잘 냈다고, 지금까지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었던가. 


요즘 하루를 낭비했다고 생각한 날엔 집에서 키우는 달퐁이(달팽이 애칭)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새끼손톱만 한 사이즈인 이 친구는 마트에서 산 상추에 딸려왔는데,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도 살아난 대단한 녀석이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 상추와 함께 작은 집을 만들어준 뒤로 어찌어찌 반려 달팽이가 되었다.


상추를 갈아줄 때, 보면 숨구멍을 뚫은 비닐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달퐁이를 볼 수 있는데,

그저 거꾸로 달린 게 힘겨워보여 저 아래 상추잎 위에 살포시 이동시켜 준다. 


그러면 몇 시간 뒤에 기어코 떼어냈던 천장 그 자리에 다시 매달려 있다. 

요즘 키우는 달팽이 

4

바닥 제일 깊숙한 곳에 데려놔도 기어코 위로 올라오는 달퐁이를 보고, 알 수 없는 묘한 자극을 받아(?)

일요일 나태 루틴을 깨고 밖을 나왔다.

원래는 출근 전 날, 일요일엔 체력을 비축한다는 명분으로 쇼파에 널브러져 있었어 하나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실은 결혼 후 겁쟁이가 되어 남편 없이는 혼자 동네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인근 동네 카페까지 나온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5분 거리의 스타벅스를 간 게 전부였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챙겨서 처음 타보는 버스, 그리고 처음 와보는 카페에 도착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직한 뒤로는 전혀 쓰지 않았던 탓에, 글을 쓰고 있으면서 내가 지금 무얼 쓰고 있었는지 헷갈린다.  


어쩌면 서투른 글솜씨로 다시 브런치를 켠 이유는, 익숙해져 버린 내일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아닐까.

밑바닥 상추 잎에서부터 멀디 먼 천장으로 기어오르는 달팽이처럼 조금씩 스스로 다른 변화를 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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