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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Apr 08. 2024

변한 건 나뿐인 건가.(feat. 군산)

여유로운 군산에서의 나날들 

센트럴시티. 8번 탑승구 

센트럴 시티(고속버스터미널) 8번, 군산 지인들과 모임을 핑계로 군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과거 2년 정도 일로 인해 군산에서 거주하며 서울을 오갔던 터라 버스를 타는 일이 자연스럽다.


비록 낯선 여행지를 가는 듯한 설렘은 없지만 아무 계획 없이 편안하게 있는 군산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군산으로 출발이다.   

오랜만이야. 군산

군산터미널로 들어설 땐 초대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도 모두 소환되곤 하는데 그건 그리움인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내리게 된다. 


"오랜만이야. 군산"  

1년 전에 왔어도, 한 달 전에 왔어도 그냥 습관처럼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다. 

마치 엊그제 온 것 같은 한결같은 풍경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군산이라 좋은 걸지도 모른다.   


지인들과의 모임은 핑계이고 (한 때)같이 살기도 했던 창업 동기인 친구 둘과 그녀들의 강아지를 보기 위해서 온 것이기도 하다. 아기 강아지 시절부터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까. 

남의 집 강아지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고 애틋하다.


매번 군산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이 드넓은 그녀들 덕분에 그들의 집에서 숙박을 하며 지낼 수 있어 강아지와의 시간도 보낸다. 이번에도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며칠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하게 낭비할 수 있는 시간

군산의 4월은 춥기도 덥기도 한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2019년 3월 트렌치코트를 입고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군산사람들은 내게 '바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캐리어 한가득 봄 옷을 채워온 나를 혼내주듯 바람은 매서웠고, 그해 봄에 나는 패딩을 구해 입고 지내야 했다. 볕이 한없이 따스해서 엄청 더울 것 같다가도 해만지면 몸이 움츠려들 정도로 춥기에 두꺼운 잠바는 필수로 챙겨간다. 


하루의 유일한 일정인 지인들과의 약속은 저녁시간이기에 여유롭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강아지와 산책을 나섰다. 종종 산책을 시켜줬던 탓에 나와 눈만 마주치면 난리다. 

오랜만에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군산 월명동에는 월명산이라는 작고 산책하기 좋은 산이 있는데 특히 이맘때에 가면 기분 좋은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산을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를 보는데 문득, 가진 건 시간과 체력뿐이니 행복하고 즐겁게 낭비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무작정 산으로 올랐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운 마음인가.

초록초록한 나무들도 떨어지는 벚꽃 그리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새소리마저도 영화 같다.     

변한 건 나뿐인 건가.

강아지와의 행복한 산책시간이 끝나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업을 하는 지인들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바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숙박과 코워킹을 함께 하며 지냈던 월명동을 거니는데 익숙한 건축물, 벽담, 간판들이 눈에 보였다. 

주민센터를 지나 1년간 숙소로 지낸 스테이 건물 앞에 걸음이 멈췄다. 

매일 아침 창업 동기들과 웃으며 5분 거리의 코워킹 건물로 향하던 예전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쟁자이면서 서로의 지지자였던 우리는 모두 또래였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마치 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밤낮없이 함께했었기에 그 시간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걷던 길을 따라 걷는데 거리가 아직도 너무 그대로여서 5년이 넘은 지금도 그들이 내 옆에 있는 듯했다. 


여유로운 공기, 느리게 흐르는 시간, 변함없는 건물과 간판들은 그대로인데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가 낯선 건 역시 내 마음이 변해서겠지 싶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과 결혼이라는 변화 앞에서 초조해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여유롭다.  


손 닿으면 

서울에서 2시간이며 수 있는 거리에, 언제든 반겨줄 지인들까지 완벽하게 갖춘 군산이 멀게 느껴졌던 건

마음속 자리 잡은 초조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sns 속 지인, 사람들은 각자가 하는 일들을 훌륭하고 빠르게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내 피드처럼 내 시간만 멈춰있는 것 같아서 알게 모르게 창피함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안함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요즘, 군산 덕에 다시 여유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손 닿을 거리에 '여유'가 존재하지만 필사적으로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하루하루를 즐기던 예전으로 되돌아가야겠다. 군산을 기점으로 


인생이 막을 내려야 할 때 비로소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니, 이는 너무나 늦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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