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반찬을 전해주시는 예비 시어머니께
"더덕무침, 두릅, 파김치, 장조림.. 몇 가지 만들었어. "
사무실로 가는 버스 안, 카톡이 하나 왔다. 예비 시어머니에게서 온 카톡이다.
내용인즉슨, 봄나물 반찬 몇 가지를 해오셨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 현관에 반찬바구니를 걸어 두고 가신다는 말씀이었다. 그날 일하는 내내 현관에 걸려있는 반찬이 마음에 걸렸다.
챙겨주신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반찬을 주실 때마다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불편하다.
우린 오랜 기간 연애를 했기에 자취하는 나를 위해 가끔씩 반찬을 만들어 오빠 편에 들려 보내 주시도 했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건만 어째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최대한 떨어져서 멀리멀리
한참 신혼집을 구하고 있던 시기, 결혼한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강력한 마법 주문처럼 "최대한 멀리멀리 떨어져"라고.(특히 시댁과의 거리를)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시댁과 같은 서울엔 살지만 거리가 있는 동네의 집을 얻기를 원했었다. 이를 꾸준히 남자친구에게도 어필하였으나 눈떠보니 시댁과 바로 10분 거리에 살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지인들의 '멀리멀리'란 주문이 반작용하여 더 가까이 가까이 된 것이라고들 했다.
어찌 됐건 결론적으론 코 닿을 거리에 살게 되어 걸어서 왕래가 가능한 처지가 된 것이다.
10년 가까이 자취한 나와 달리 홀로 독립한 1년을 제외하곤 부모님 댁에서 쭈욱 살아온 남친은 그저 본가가 가까워 아주 신나 보였다.(아니 신났었다)
그렇겠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이리도 정성스럽게 싸주시는데 좋아야지 :)
최애캐들의 만남
나도 집안의 장녀, 남자 친구도 집안의 장남.
우리는 k 장녀, 장남 커플로서 각자 서로의 집 엄마들의 최애캐들이다. 그들의 애정은 강력하여 감히 동생들은 넘볼 수 없을 정도이다.
실제로 고향에 살 때는 엄마가 주말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거에 서운해하셨다.
엄마의 과한 애정과 집착은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도 고향 갈 때는 가족 외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다.
엄마의 사랑을 몸소 겪어봤기에 남자 친구와 어머니의 대화나 행동을 보자마자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아.. 내 가정환경과 닮은 남자를 만났구나."
물론 집착과 애정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미래의 결혼생활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불안전한 애착관계
전공이 심리상담이었던 난 23살에 처음으로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을 듣게 된다.
어느 날 교수님은 오래된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다양한 유형의 부모 자식 관계가 흘러나왔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초등학생 자녀의 등교시간에 맞춰 머리, 옷, 신발 등 모든 걸 챙겨주는 장면,
그 영상 속 아이는 내 어린 시절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늘 단정했던 머리, 원피스, 액세서리 등 어느 하나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던 아이였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동생과 달리 말 잘 듣고 순하디 순한 첫째 아이, 그게 나였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교수님은 그것이 건강하지 못한 애착 관계임을 설명해 주셨다.
주 양육자인 엄마는 자신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온순한 첫 째 아이에게 투영하기 쉬워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데, 심할 경우 서로 간의 심리적 분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향후 아이가 성장했을 때,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할 위기, 순간이 오면 상황을 직시하기보단 회피하거나 불안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했었던 것 같다.(정확하진 않음)
엄마(어머니)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마 그때 엄마에게서 서서히 독립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멀고 먼 서울을 택했을 것이다.
평생을 취미 없이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온 엄마에게 집을 떠나기 전 가혹하지만 이 말을 전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 엄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 말이야."
무뚝뚝한 아버지를 대신해 삼 남매를 데리고 홀로 여행을 다니셨던 엄마에게는 괘씸했을 말이었겠지만, 결코 엄마가 귀찮아서도 싫어져서도 한 말이 아니다.
그저 자식 밖에 없는 엄마가 안쓰러워서 홀로 취미를 즐기는 아빠처럼 엄마도 그리되기를 원했던 것뿐.
그로부터 십 년 넘게 지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려는 첫 단계에 서있다.
예비 시어머니에게서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고, 낯설지 않게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나는 함부로 "이제 오빠가 독립하게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수 없다.
그녀들에게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존재인걸 알기에.
하지만 이제는 이 말씀은 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스로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시간을 찾아보세요. 저희만을 바라보기엔 엄마들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