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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Apr 16. 2024

10.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같이 게임을 하세요. 

만들었던 게임 에피소드 중 1개 (관련 설명)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우리가 만들었던 야외 미션 추리게임을 즐기는 고객은 주로 20~30대 커플 혹은 친구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이었다. 그들의 취향, 행동 패턴을 파악해서 게임의 시간, 난이도, 코스, 장소등이 결정된다.


이처럼 고객의 니즈와 불만사항 등을 직접 수집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기에 문의는 내가 직접 응대하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말만 되면 카카오톡 채널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려대곤 했다.

  

낯선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특성상, 대응은 최대한 신속하게 이뤄져야 했다.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답변하고 친구들과의 여행 중에도 답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람들은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오늘은 게임을 팔면서(?) 만나본 게임을 즐기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유형 1) 무한 의심형 

이 타입의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방탈출 게임, 퍼즐 게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많기에 시작부터 열정적이다.

이들은 게임 시작 전 제공되는 사전 스토리와 미션지를 샅샅이 흩어보며 하나도 헛으로 넘기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고객이자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가령 미션지에 디자인 요소로 넣어놓은 작은 문양을 보고 단서로 생각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응대로 단서가 아님을 알려드렸음에도 의심을 놓지 않으셨다. 


" 저 00 미션지에 있는 동그란 문양은 어떤 의미예요? "

"디자인요소로 사용된 단순한 문양이라  퀘스트와는 상관없답니다 :) "


세심함과 꼼꼼함 겸비한 이분들은 자유분방하고 계획적이지 못한 내 기획에 낚인 것이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넣어놓은 것들로 인해서 혼돈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  


아마 무한의심형 타입은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사람들일 것이다.   

유형 2) 컨셉 심취형  

게임의 기본 컨셉이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기 때문에 앱, 미션지 여기저기에 당신이 요원임을 알려주는 장치를 많이 넣어두었었다.  


카카오로 문의할 때 사람들은 주로 '안녕하세요.' '저기요' '지금 000 하는 중인데요.'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타입의 사람들은 시작부터 남다르다. 


"본부 나와라, 본부 나와라." 


원래도 딱딱한 말투인 내가 제일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다. 요원 컨셉에 몰두하신 고객님을 실망시킬 순 없으나 로봇 같은 말투를 어떻게 숨겨야 하나 잠깐 고민한다. 


이런 걸 즐기는 대표에게 토스하면 요원 고객님과 둘이서 컨셉에 푹 빠진 깊은 대화가 오고 간다. 

읽고 있으면 화끈거리긴 하나 게임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유형 3) 집에 가고파 형 

대부분 타의에 의해 강제로 참여하게 된 사람들인데 상대가 이색 데이트를 원해서 끌려오는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들이다.(커플들은 이 유형이 가장 많다)   


이들에게 2~3시간 게임 시간은 고문과 다를 바 없기에 상시로 볼 수 있는 힌트와 정답(해석 포함)을제공한다.

그래서 보통 퀘스트 지시를 보기도 전에 힌트부터 열어보고 정답을 보며 거꾸로 따라가는 식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게임은 정답을 열고 따라만 가도 동선 거리 때문에 기본적으로 30분 이상은 걸렸다.  

내 베타테스터인 남자친구도 이 타입에 해당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영혼이 가출하는 걸 볼 수 있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난폭해지기 쉽기 때문에 힌트와 정답이 있음을 상기시켜줘야 하는 타입들이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길바닥에 있는 게 아니라니까!!" 

예전 제한된 개수의 힌트만 알려주던 시절, 욕설과 함께 소리치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더 힘들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유형 3) 승부사형 

힌트와 정답이 제공되지만 절대 보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답을 찾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 타입의 사람들은 신기하게 서로 비슷한 기질이 있는 사람들끼리 오는 경우가 많다.   


게임 유의사항에 [야외게임의 특성상, 어둡거나 해가 지면 게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혹시 모를 위험상황에 대비한 안내 문구이다.

 

" 저기, 저희가 게임 중인데 혹시 해가 지면 못하는 건가요??!!" 


게임에 제한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날, 낮에 와서 이어 하시기"를 권장하는 편이다. 


승부사형 타입의 사람들은 기능상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뒤, 늦은 밤까지 하고 돌아간다.

이들의 플레이 타임은 평균 3시간 이상이 찍혀있다. 승부사 기질이 체력을 이긴 것 같다.   


가끔 최악의 조합으로 집에가고파 형과 승부사형이 함께 플레이하러 오면 각각 돌아다닌다.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오늘 정리한 유형 말고도 정말 다양한 행동, 성격의 사람들이 게임을 하러 찾아왔었다.  

환경, 시간, 체력적 제한이 존재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타인과 함께 즐기는 게임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평소 타인에게 많은 걸 맞춰주는 평화주의자라 생각했던 나도 타인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승부욕에 미친 사람 같은 실제 내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  


아마 우리의 게임을 즐겼던 수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아이, 친구, 이성친구의 숨겨진 본성을 간접적으로 보고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함께 게임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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