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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nie Jul 20. 2020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의 母순

이중잣대로 드러나는 혐오의 민낯- 성모마리아와 맘충?

미러링 논란과 최근 몇 년 간의 미투(#Metoo) 운동 등 젠더 이슈가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몇 년 지나지 않은 것에 비해,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중세 서양의 기독교에서 여성을 마녀와 성녀로 이분화하여 여성을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 종속시킨 것과 같이,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들이 스스로를 검열하여 가부장적 사회와 남성들이 원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여성을 성녀와 창녀, 현모양처와 꽃뱀, 개념녀와 김치녀, 착한 여자와 기 센 여자 등의 단순화된 프레임에 가두고 규정지어 온 바 있다. 이는 여성을 옳거나 그른 이미지로 타자화시키며 인간으로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특성을 일축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보여지는 여성 혐오적인 이중 프레임들 중, 가장 모순적인 워딩이라고 여겨지지만 매우 만연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두 가지 개념인 ‘성스러운 모성’과 ‘맘충’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성스러운 모성’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숭배하는 것으로 사용되며, 저출산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레임 중 하나이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감동적인 모성애’ 등의 통념은 육아와 집안일을 홀로 감내하는 어머니의 희생을 숭고한 것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그러한 희생을 여성만이 짊어져야 하는 당연한 일로 치부해 버린다. 의무 교육의 성교육 시간에도 학생들은 실제적인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제공받지 못한 채, 이러한 일들을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맡아야 하는 것이라고 학습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모성애를 강요당하며, 그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순간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모성 숭배를 통해 사회는 출산율을 높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부담과 비용은 여성이 감내하게 한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가 원하는 집 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모순적이게도, 한국 사회는 모성의 강조를 통해 집 안에 가두어 버린 여성의 지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어머니를 비하하는 개념을 창조한다. 이른바 ’맘충’이다. 어머니(mom)와 벌레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일반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아이들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여성을 일컫는다. 이는 노키즈존의 등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린 아이들의 소란에 매우 불쾌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인식과, 대디-충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아이의 돌봄은 전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라는 가부장적 발상에서 생겨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맘충이라는 개념이 교묘하게 아이가 있는 모든 여성들을 압박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자를 적법하게 비난한다’는 사회적 함의가 이러한 비하를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맘충과 같은 비하 발언은 매우 주관적으로 사용되기에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맘충’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며, 이는 여성을 더욱더 집 안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맘충’이라는 조롱을 듣는 김지영 씨의 장면이 담겨 있다.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 씨를 흘긋 본 회사원 남성들은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라고 말하며, ‘어머니’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희생정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를 비하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영화화된 『82년생 김지영』중 김지영 역의 정유미. 그저 산책을 나왔는데 불특정 다수에게서 조롱을 듣고 만다. 현실에는 과연 이런 일이 없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애 숭배와 맘충이라는 비하가 한국 사회의 유자녀 여성에게 공존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어머니’가 책임져온 임신과 출산, 육아와 가사일에 대한 양가적인 시선이다. 이는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데에는 꼭 필요한 역할이면서도, 경제적으로 소득을 얻지 못하기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역할이다. 한 마디로,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내가 하기는 싫은’ 역할인 것이다. 따라서 ‘모성애 숭배’는 여성들이 기존과 같이 이를 자발적 의무로 여기게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맘충’이란 실제로 그 일을 다른 경제활동보다 아래로 여기는 사회의 민낯이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존중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유자녀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 육아, 가사일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비물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제도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가정 주부가 적합하게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정책적 방안 도출 혹은 남성들의 가사 노동 장려 및 체험교육 의무화, 관련 사회 인프라 구축 등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의 역할이 여성들에게만 강요되지 않도록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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