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수록 운동해야 하는 이유

통증과 두려움을 키우는 '노시보(Nocebo)' 효과

by 운동지도자 앤지


휴가차 일본 여행을 갔던 회원 A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행 전 날 등산을 갔다 발목을 다쳤는데, 그날부터 무릎 주변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여행 중이어서 계속 걷다보니 통증이 잘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인대가 손상 되었을 수 있으니 한국에 돌아오면 꼭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라고 당부했다.


A는 일주일 뒤 병원에서 MRI를 촬영했다. 걱정과는 달리 급성으로 손상된 인대는 없었다. 의사는 반월판(무릎 앞면의 인대)이 손상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덧붙인 말에 그녀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고, 나중에 수술해야해요


의사가 말하길, 반월판 손상은 퇴행성으로 진행된 것으로 더 이상 손상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골다공증이 있기 때문에 더 예후가 좋지 않으며, 지금이 아니라고 언젠가는 반월판이 찢어질 것이라 했다. '운동을 한다 해도 막을 방법은 없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수술하게 될 거다. 그러니 괜히 무리해서 운동하지 마라.' 이게 의사가 해 준 조언이었다.


집에 돌아 온 A는 펑펑 울었다. 더 건강해지려 식단도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나아질 방법이 없다니. 무력감이 들었다고 했다.


말 한마디가 회원에게 미치는 영향

필라테스를 가르치다 보면 만성 통증이 있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땐 내가 뱉는 말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위험해요“, ”이렇게 움직이면 허리 다쳐요.“ 돕고 싶은 마음에 뱉은 말이 회원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일개 필라테스 강사의 말도 이렇게 회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의사 같이 권위있는 전문가의 말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회원 B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B는 빙판길에서 심하게 넘어져 무릎 내측 인대가 손상된 채 나를 찾아왔다. 의사는 grade1 수준의 손상이니 재활이 잘 진행되면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B는 몇 달간 열심히 운동하며 서서히 회복했고, 나중에는 무게를 들고 스쿼트나 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자기 인생에서 이만큼 스스로가 강하게 느껴졌던 때가 없다고 했다. 자연스레 살도 많이 빠져 난생 처음 M 사이즈 옷도 입는다며 기뻐했다. 당연히 나도 B도 이제 수술은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뜻밖의 이유로 B의 수술을 취소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의 한 마디가 불러온 체중 강박

의사는 슬개골(무릎뼈)의 주행 경로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잘 회복 중인 거 같지만 여전히 과체중이기 때문에 몸무게를 3킬로 더 빼지 않으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B는 절망했다. 직장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수술과 회복을 위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B는 커리어와 승진에 차질이 생길까 봐 두려웠고, 이는 체중에 대한 강박을 만들었다. 새벽에도 자다 깨서 체중계에 올라갔고,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두려움에 잠을 자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엄밀히 따지면 의사가 뭐라 하든 B는 수술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가 말했으니 본인에겐 선택권 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무사히 3킬로를 감량하고, 의사로부터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운동지도자가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 노세보 효과


나는 A와 B가 만난 두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히 어떤 워딩을 사용했는지 알지 못한다. 회원들이 이해한 바와 의사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달랐을 수도 있다. 정말 체중만으로 최종적인 수술 여부를 판단하려고 했거나 어떤 노력을 해도 결국엔 수술하게 될 것이라는 워딩을 사용하진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데 허락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10분이라는 진료시간은 환자에게 왜 반월판 손상이 생겼는지, 어떤 운동을 어떤 강도로 해야 이 손상을 막을 수 있을지, 체중감량은 왜 MCL 재활에 중요한지, 의사가 생각하는 적정체중량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된 것인지 자세히 말해주기에 부족한 시간이다. 더군다나 환자가 이번 진료 후에 다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게 말을 줄이고 줄이다보니 ‘반월판 손상은 막을 수 없습니다.’ ‘살 안빼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어요’라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이 되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보면 진실인 그 이야기에 너무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고, 의사의 의도와 다르게 생략된 내용은 종종 오해를 낳아 환자들에게 움직임을 두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자기 충족 예언이 되어 실제로 더 큰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통증은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평소엔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오랜 시간 지하철에 서 있거나 장시간 도보여행을 하는 일)을 할 때 두려워진다. 두려움은 근육을 뻣뻣하게 굳히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든다. 이런 움직임은 또 다시 통증을 증가시킨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줄이기 시작한다. 운동을 해야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운동을 하면 더 아파질지 걱정돼서 주저한다. 그러는 사이 근육은 더 약해지고 퇴행성 관절염은 더 심해진다.


또는 의사의 진단에 자신의 상태를 끼워서 맞추기도 한다. 내 회원이 스쿼트, 런지, 데드리프트까지 척척 해내면서도 스스로를 여전히 수술이 필요할지 모르는 환자라고 규정했던 것처럼.


이를 노세보 효과라고 한다.


노세보 효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말로 환자가 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할 때 실제로 더 나쁜 효과가 나탄난다는 뜻이다.


의사의 말대로 반월판 손상은 자연적으로 재생되기 어렵다. 다만, 이 한 문장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월판 손상은 무릎 통증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


아래 논문은 반월판 연골 파열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통증 여부를 조사한 것이다. 연구 결과, 이들 중 60%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연골 파열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치가 증가했다. 연골 파열은 노화에 의한 현상일 가능성이 높고, 무릎 통증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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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mith RW, Kwoh CK, Wisniewski SR, et al. Prevalence of MRI-detected knee abnormalities in asymptomatic adults. N Engl J Med. 2008;359(11):1108-1115. doi:10.1056/NEJMoa0800777. 링크)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달리, 많은 논문에서 반월판 연골 파열로 무릎 관절 내시경 수술을 하는 것의 효과가 미미하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의료저널인 BMJ(British Medical Journal)에서는 2017년 퇴행성 관절염과 반월판 손상에 대한 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관절내시경 수술은 퇴행성 무릎 질환 환자의 통증이나 기능 개선에 있어 유의미한 향상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퇴행성 무릎질환에 대한 수술을 반대했다. (O'Connor et al.,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22). 링크


하지만 대다수의 환자는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반월판이 무엇인지 병원에 가서 처음 알았을 것이고, 내 몸에 중요한 것이 찢어져 있으며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잔뜩 겁을 먹게 된다. 더 이상 반월판이 찢어지지 않게 아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걸을 때 무릎이 괜히 더 아픈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월판이 손상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손상되었다고 무릎을 쓰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운동은 연골을 닳게 하지 않는다.


적절한 부하의 운동은 오히려 연골을 강화시킨다. 우리 몸은 주어지는 부하에 적응하기 위해 뼈와 연골을 강화시킨다. 만약 부하가 없다면, 우리 몸은 효율을 위해 뼈도 연골도 강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과도한’ 부하이다. 때문에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강도’가 문제인 것이다.


너무 낮거나 높은 강도의 운동은 퇴행성 관절염에 좋지 않다. 의사 선생님이 이런 적절한 강도의 운동을 개인에게 맞춰 처방하기란 쉽지 않다. 대체로 운동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고, 설사 그렇다 해도 적절한 처방을 내리기에는 진료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라도 환자의 마음을 읽을 순 없다. 나의 설명을 통해 통증의 정도를 짐작하고, MRI 검사로 통증의 원인을 추측할 뿐이다. 내 통증의 유일한 경험자는 나다. 어떤 움직임을 할 때 아픈지, 반대로 어떤 자세로 있으면 통증이 줄어드는지, 어떤 운동을 할 때 통증이 없는지, 얼마나 운동하면 다음날 통증이 줄어드는지. 그걸 아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다.


나 역시 회원들에게 늘 얼마나 힘든지,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보며 운동을 진행한다. 회원의 의견 없이 내가 일방적으로 무슨 운동을 몇 번씩 해야 하는지 정할 수는 없다. 통증이 있다면 강도를 낮추거나 아프지 않은 운동을 찾으면 된다. 운동을 하고도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하면 된다. 본인에게 맞는 운동과 강도는 자기 자신만 찾을 수 있고, 운동 전문가는 배경지식을 기반으로 적절한 선택지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니 의사 선생님이나 운동 강사의 말 한마디에 너무 쉽게 겁을 먹고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위에 눌려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강해져서 못 하던 등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두려움 없이 멀리멀리 여행도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노세보 효과에 지지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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