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집어삼킬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일까. 길이와 규모, 정도를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의심의 여지없이 타당하다. 불의의 사고, 막막한 미래, 초월적인 존재의 위협. 그러나 반대로 그 고통 속에서 운명을, 그리고 숭고함을 느끼는 건 무슨 이유인가.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헤브는 바다의 괴물 "모비딕"에게 숙명을 느낀다. 에이헤브의 다리를 앗아간 향유고래, 모비딕은 고래잡이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배를 산산조각내고, 사람을 삼키는 일이 모비딕에겐 예사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에이헤브는 그곳에서 운명감을 마주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고. 자신은 그것뿐이라고.
그렇다. 삶은 무력감을 넘어 운명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