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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Oct 24. 2018

Einmal ist keinmal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부터

<Einmal ist keinmal, 한 번뿐인 것은 아무 의미 없다.>


Picasso, Girl before a mirror (1932)


The German proverb 'einmal ist keinmal' means "once doesn't count" (literally "once is never"), used to say that a single event is not significant or that one can be forgiven the first time one makes a mistake (but, implicitly, not the second time).

- Wikipedia


 한 번뿐인 것은 아무 의미 없다. 토마시는 이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사상은 처음 등장부터도 정말 재미있는 생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한 번이라고 여기는 이 삶이, 여러 번 그리고 영원히 반복될 거라니. 토마시는, 이 사상이 어쩌면 생(生)은 ‘다름 아닌 단 한 번'이라고 오히려 역설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또 ‘만약 우리가 딱 한 번의 살아갈 기회만 존재한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는 걸지도. 그렇게 자조하는 토마시였다.


 토마시는 단 한순간도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왔고 그녀들에게 연인인냥 행세하였다. 남의 눈에는 바람기로 그칠,  이름하여 ‘에로틱한 우정’이라 스스로 일컫는 이것은 토마시에겐 그저 ‘미지(未知)로의 탐험’에 지나지 않는단다. 절대 바람을 피우는 것도, 또 사랑도 아니란다. 그렇다면 그건 마치 안개에 싸여 답답하고 궁금해서 미치겠다가, 마침내 안개가 물러나서 빛으로 눈부신 상쾌인가, 그러나 단지 잠시뿐인 찰나의 광명, 혹은 쾌락.

 그러나 그 이유는 다름 아닌 ‘einmal ist keinmal’에서 싹 튼 걸지도 모를 일이다.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은 그러니까 미지로의 탐험은, 마치 한 번뿐인 사랑으로부터 핀 불안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향한 갈구와 같이 어떤 결핍의 표현으로 내겐 비친다.


 인생에서 짧은 한순간이라도 사랑을 뺄 수 있는 때가 있을까. 지나간 다신 없을 사랑 또는 아직 오진 않은 영원한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테레자를 알기 전의 토마시는 진정한 사랑에 목말랐고, 테레자를 만난 이후의 토마시는 한 번뿐인, 테레자만이 지속할 수 있는 그 사랑에 불안을 떨어야 했다.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토마시는 그야말로 ‘사랑’을 알아버린 것이다. 사랑. 온갖 가벼운 연인들의 이야기들과 가족 사이의 불가역한 사랑 그리고 텔레비전, 라디오, 노래 가사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숱한 말들로 덧칠해져 색을 잃은 이 단어가, 사랑이 테레자에 의해 비로소 발견된 것이다. 생전 만나본 일도 없지만, 마치 잃어버린 ‘나’를 만난 것처럼.

 사랑은 탄생처럼 다가온다. 울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기쁨.


 Einmal ist keinmal. 한 번뿐인 것은 아무 의미 없다. 토마시는 이 독일 속담을 다시 되내었다. 사랑을 발견한 뒤로, 토마시는 여러모로 불안하고 참을 수 없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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