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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Oct 16. 2018

토마시의 사형선고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부터

Picasso, Massacre in Korea (1951)



 바오로 산으로 쫓겨난 지 꽤나 되었다.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불평한 죄로, 지독한 선고를 받았다. 그것은 죽음의 선고. 테레자가 올라간 그곳엔 총을 든 낯선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처형받길 기다리는 몇몇의 남자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가 사형 선고를 내리다니. 받아들일 수 없어도 사랑한다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몰라. 그렇더라도 그 순간에 테레자는 충분히, 정말 확신하건대, 자기 존재를 의심했음이 분명하다. 나를 나답게 살게 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내리는 형벌이 사형이라니.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쏘여진 납덩이 하나에 고깃덩어리로 변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었을까.


 산을 오르는 길에 더운 몸이 금방이지 차게 식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죽음 말이다. 삶을, 사랑을 열렬히 했던 그 육신이었는데. 눈먼 화살에 맥 없게도 심장이 뚫려, 아차 하고 삶을 등진 삶이여. 눈을 맞대고 이마를 비비며, 행복에 겨워했던 시간들이 고작 납덩이에 또는 눈먼 한 마디에 저무는 것은 저물어버리고 마는 것은 시체와도 같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테레자는 엉엉 울었다. 슬펐다. 이렇게 찰나에 모든 걸 잃고 산으로 내버려지는 일이. 아니, 그게 아니라 몸이 버려지고 나서야, 그러고 나서야 몰랐던 그러니까 인지할 수 없었던, 그동안 소외되었던 마음을 알아챈 걸지도 몰라. "이건 내 의사가 아니에요." 토마시를 거절하듯 죽음의 선고를 되돌리고, 그리고 비로소 이제까지 사랑받지 못 하였구나, 그동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였구나 하고 스스로 깨달았으니. 총을 거두어 준 사내가 고마운 건 그 이유에서 일 테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적 있다. 그 길로 산에 올라 나무에 스스로 묶였다. 총을 꺼내 스스로를 겨누었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엉엉 울었어. 여기에 묶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누가 죽으라 했던가, 총은 누가 쥐어줬지, 지금 몸이 더운가 식었는가. 눈을 떠보니 그냥 산 어딘가에 주저앉아 부은 눈만 비비고 있다. 돌아갈 곳도 없이.


 테레자는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토마시에게로 간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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