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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ii Apr 21. 2017

유치진지한 여행기 - 오사카&교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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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 강


자전거 타고 퇴근해서 강가에 앉아 컵라면 먹는 직장인들. 이마저도 부럽다. @카모 강


흐린 하늘마저도 다 좋았던 저녁 @카모 강


슬슬 해가 졌다. 카모 강을 따라서 시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는 그렇게 한산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던 카모 강변이 저녁이 되자 강을 따라 늘어선 음식점들의 불빛과 사람들로 채워졌다. 강가의 저녁 공기를 즐기는 가족들, 퇴근하는 직장인들, 산책하는 연인들. 나도 그 사이에서 천천히 걸었다. 그들에겐 평소와 다르지 않은 여유로운 일상의 저녁이었겠지만 나는 이 곳에서의 여유로운 일상에 대한 부러움과 교토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시라카와미나미 거리


좋은 곳에 식사하러 왔다가 원치 않는 사진 1000장 쯤은 찍혔을텐데. 저도 조금 거들었어요. 스미마셍. @시라카와미나미 거리 


서양 관광객들도 가이드가 든 깃발을 따라 졸졸 따라다니는구나. @시라카와미나미 거리


하루를 마감하는 가게 @기온 거리


고양이 닮은 사람 인형을 파는 가게. 그런데 왜 'JAPANESE ONLY' 였을까. @기온 거리


교토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이 날 오후에는 교토 관광이 아닌 진짜 내 여행을 했다. 홀로 떠났던 제주도에서 그랬듯 뚜렷한 목적지 하나 없이 걸으며 나의 시선과 느낌을 온전히 눈과 사진 속에 담았다. 철학의 길에서 많은 관광객을 견디지 못하고 나왔던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지금도 아른거리는 그 골목, 거리, 그리고 그 분위기. 좋아하는 시간에 좋은 장소에 있을 수 있어 한없이 좋았던 오후였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던 숙소. 교토에 다시 오게되면 또 와야겠다. @피스호스텔 산조


@시조가와라마치


건널목이 관광지인 것처럼 절반은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서서 구경만 한다. @후시미이나리역


@후시미이나리 신사


화 안 난 여우 @후시미이나리 신사


풍요를 상징한다는데 화난 여우 @후시미이나리 신사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앞선 이틀보다도 빠른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8시쯤에 후시미이나리 신사(伏見稻荷神社)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에 하나라는 말을 듣고 나름 일찍 출발한 것이었는데, 그 인기를 만드는 관람객들이 이미 잔뜩 와있었다. 


@후시미이나리 신사


후시미이나리 신사에는 각기 다른 곡선의 오르막에 각기 다른 밀도, 또 각기 다른 크기의 토리이(鳥居)가 끝없이 늘어져 있다. 때문에 후시미이나리 신사에서는 비슷한 사진은 찍어도 같은 사진은 못 찍는다고 한다. 어차피 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오르내리기 때문에 같은 장소를 찾더라도 같은 사진은 찍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름 이른 시간에, 그리고 어느 정도 산을 올라와야 이렇게 사람이 없는 토리이를 찍을 수 있다. 이 사진들도 사람이 프레임에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1분 정도를 기다려서 겨우 담을 수 있었다. 기모노를 입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을 보면 다들 기다려주다가 지나가던데. 혼자 온 사람은 어쩔 수 없지 뭐.


나쁜 여우 탈을 벗은 착한 여우 @후시미이나리 신사


화내지 말아주세요 @후시미이나리 신사


나 살아있거든 @후시미이나리 신사


이제야 밀려오는 관광객들에 쫓기듯 올라가는 도중에, 돌과 나무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고양이를 발견했다. 저 자세로 미동도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팔을 뻗어 카메라만 들이대 찍고 보니 말똥말똥한 눈으로 뭔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카와이 하며 웅성대고 내가 다가가서 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는데도 움직이지 않던 고양이가, 한 젊은 한국인 부부가 '나비야~'하는 소리를 듣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저 아래로 도망가버렸다. 그 부부는 여러 국적 관광객의 아쉬워하는 눈빛을 잔뜩 받으며 후다닥 토리이 길을 올라갔다. 그 사이에 한국산 아쉬운 눈빛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 


이번 여행에서 본 사람 중 제일 멋있는 사람을 화장실 앞에서 발견했다. @후시미이나리 신사


한 파트가 끝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주는 공연장이 되어버렸다. @후시미이나리 신사


웃으면서 내려다봐주면 안되겠니 @후시미이나리 신사


@후시미이나리 신사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를 앞질러간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토리이 터널을 따라 산을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니라 관광객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쯤 정상은 포기하고 내려왔다. 워낙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규모나 화려함을 봤을 때 한 번 와볼 만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죠거리


마음에 들었던 한 옷가게에서. 옷은 안사고 사진만.. @시조가와라마치


버스를 타러가는 짧은 시간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줬던 골목 풍경도 안녕 @시조가와라마치


가와라마치로 돌아와 마지막 점심식사를 끝내고 이제 슬슬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분명 이틀 전 숙소로 끌고 가던 것과 같은 가방인데, 공항으로 향하는 길의 가방은 3배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교토역에서 출발하는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고 다시 도착한 간사이 공항. 3일 전 설렘을 가득 안고 도착했던 그 공간이 며칠 새에 현실에 체념하도록 만드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이트에서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예보보다 한참 늦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큰 창을 때리는 것을 보며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곱씹어봤다. 일본어 한마디 못하는 채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일본에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와서 되는대로 돌아다닌 것 치고는 나름 괜찮았던 여행이었다. 여러 번의 제주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의 끝자락도 역시 한없이 아쉽지만, 그 아쉬움이 있어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첫 해외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채워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 제주 여행이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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