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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ii Nov 08. 2017

유치진지한 여행기 - 규슈(3) :  가라쓰&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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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은 빠르게 @니지노마쓰바라


카가미야마에서 내려와 니지노마쓰바라로 가는 사이에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저 노을이 소나무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사실 니지노마쓰바라까지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서 서두르면 금방 갈 수도 있었지만, 노을이 마을 위로 쏟아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니지노마쓰바라


소나무 숲 사이에 서있는 사진 하나만을 위해서 삼각대를 챙겨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었다. 숲에 들어가자마자 모여든 모기 수십 마리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삼각대를 펴놓고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풀을 헤치고 들어갔더니 도깨비 풀씨 수십 개가 옷에 달라붙었다. 구석구석 어찌나 많이 붙었던지 며칠 후에 옷을 정리하다가 남은 풀씨를 발견하기도 했다. 풀씨를 힘들게 떼어내고 나서, 휴대폰으로 셔터를 누르고 찰칵 소리가 나자마자 모기를 쫓기 위해 손과 발을 파닥거리기를 반복했다. 겨우 10장 정도를 그렇게 찍고 나서 그렇게 내 삼각대는 여행에서의 임무를 다했다.


숲 한가운데에 웬 헬스장이 @니지노마쓰바라


5분만에 이렇게 어두워졌다. @니지노마쓰바라


후다닥 사진을 찍고 니지노마쓰바라에 오면 먹어봐야 한다는 가라쓰 버거를 먹어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깨비 풀씨를 피하기 위해 숲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로 나갔는데,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무성한 숲 때문에 빛은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가로등도 하나 없고, 갓길은 너무 좁아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10분가량을 걸어갔다.


목숨을 걸고 찾아간 오늘의 첫 끼 @가라쓰 버거


가라쓰 버거는 영업시간이 저녁 8시까지 인데 마음대로 일찍 닫을 때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찾아가면서도 이렇게 어두워졌는데 혹시 닫고 가버리지 않았을까 했었다. 다행히 길 옆 조그만 공터에 트럭 한 대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날 먹은 유일한 끼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버거는 너무나 맛있었지만, 머릿 속은 숙소에 어떻게 돌아가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니지노마쓰바라


계속해서 그 찻길을 걷다가는 납작해져 생을 마감할까 봐 휴대폰 플래시에 의존한 채 숲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나왔다. 모래사장 위라서 발은 푹푹 빠지고 바닷바람은 엄청나게 불어댔지만 깔려 죽을 위험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 멀리 초록색으로 빛나는 가라쓰 성이 눈에 보이니 마음은 편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여행 전에 크게 기대를 하고 갔던 곳에서 공포만 잔뜩 느끼고 온 것 같다. 


무단침입 @니지노마쓰바라


그렇게 가라쓰 성을 바라보며 해변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쳤다. 말 그대로 벽이 있었는데, 해변가를 따라서 있었던 리조트들이 해변을 따라 넘어올 수 없도록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놓은 것이었다. 다행히 썰물 때라서 물이 빠진 쪽으로 벽을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들어와 보니 리조트 한가운데였다. 등산에 바닷바람까지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오션뷰 리조트의 야외수영장 옆에 서있는 꼴이라니. 나 자신이 어이가 없어 리조트 한가운데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들어온 반대쪽은 해변이 아니라서 그대로 걸어나갈 수가 없어 몰래 리조트 담까지 넘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인 건지.. 그렇게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침대에 쓰러져 길고 긴 하루를 마감했다.






가라쓰에서 사가로 @가라쓰 선(Karatsu Line)


이걸 보기 전까지는 생각없이 하우스텐보스가 HOUSE TEN BOSS인 줄 알았다...  @사가 역


선로의 끝 @나가사키 역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사키(長崎)로 향했다. 사가(佐賀)를 거쳐서 3시간 반이나 기차를 타야 하는 거리였다. 사가도 일정에 있었기에 가라쓰-사가-나가사키 순으로 일정을 짰으면 효율적이었을 텐데, 그 날짜에 사가에 도저히 숙소가 나오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이동경로가 나오고 말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버스 대신 기차를 타고 싶어서 레일패스를 구입해서 여행 내내 여러 전철과 기차를 타보았는데, 별 거 없으면서도 여기저기 시선이 가는 통에 긴 이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눈을 붙일 틈이 없었다.


음식 관련 행사가 한창이라 시끌시끌했던 @나가사키 역


첫 노면전차 영접 @나가사키 역


1층은 자전거, 2층은 카페, 3층은 호스텔 @트래블러 하우스 온 더 루트(Traveler's House on the ROUTE)


이번 여행 6박 중에서 4박은 비즈니스호텔, 1박은 캡슐호텔, 1박은 호스텔에서 지냈다. 호텔 숙박이 몸은 편하긴 하지만, 마음이 편한 건 역시 호텔보다 호스텔 쪽이다. 호스텔 직원 분이 얼마나 친절하시던지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해주시는 건 물론이고, 체크인 시에 쿠폰과 지도를 여러 개 펴놓고 관광지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혼자 조용한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이런 게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모토후나마치(元船町)


@데지마 워프


@나가사키현 미술관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나와 20분가량을 천천히 걸어 데지마 워프(出島ワーフ)에 갔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애써 찾아왔는데, 큰 배와 요트를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정도의 느낌이었다. 데지마 워프 끝에 건물이 멋져서 들어가 본 나가사키현 미술관이 더 볼거리가 많았다.



망한듯 @이나사야마


까마귀는 잘보이네 @이나사야마


아침부터 당장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가 계속되니까 발걸음도 힘을 잃었다. 이나사야마(稲佐山) 전망대에 가야 하는데 날씨가 흐려서 멀리 보이지도 않을 것 같고. 나가사키 역까지 걸어오는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나사야마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가사키 역에서 이나사야마까지 올라가는 버스가 있길래, 전망대 근처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로프웨이는 이용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전망대까지 15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는 동안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수증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듯한 빗방울을 뚫고 전망대에 들어가니 빠르게 움직이는 조각구름들이 안개로 보일 정도로 앞이 흐렸다.


@이나사야마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날이 어두워지는 건 보고 가자 하고 전망대에 앉아 어두워지길 기다리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앞이 조금씩 맑아졌다. 전망대 옥상에 올라가자 넓게 펼쳐진 눈 앞의 야경에, 여전히 흩뿌리던 비와 강한 바람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가사키는 항구 주변을 따라서 산과 언덕이 많다 보니까, 그 위에 있는 주택가의 불빛이 마치 빛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3대 ○○', '일본 5대 ○○'와 같이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는 일본이 이 이나사야마의 야경을 '세계 신(新) 3대 야경'이라며 붙였다고 하던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서 이런 신기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날도 흐리고 삼각대가 없어 눈으로 본 것의 절반도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게 아쉽다.


올라갈 때는 5번이었던 버스가 내려갈 때는 70번으로 바뀐다. @이나사야마


밤에 보는 노면전차. 내일 타러 다시 올게. @나가사키 역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이나사야마 전망대 @나가사키 역


동상인 척 @나가사키 역


시크한 너 말고 애교 많은 그 냥이 꼭 만나고 싶었는데. @니시자카 공원


'나가사키 26 성인 순교지'와 '니시자카(西坂) 공원'이 숙소에서 20초 거리에 있었다.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굳이 이 니시자카 공원에 가서 30분씩 앉아있었다. 천주교를 믿지는 않지만, 성당이나 천주교와 관련된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그 느낌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이게 공원을 찾았던 주된 이유는 아니고, 여행 전에 봤던 한 브런치 글 때문이었다. 지난겨울, 작가분께서 이 공원에 오실 때마다 한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무릎 위에서 낮잠까지 즐기다가 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귀여운 방울 목걸이를 한 그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 이 공원을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찾았는데 결국 그 고양이는 만나지 못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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