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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ii Nov 23. 2017

유치진지한 여행기 - 규슈(5) : 사가&후쿠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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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만 붙여도 되잖아? @마쓰바라(松原)


@마쓰바라


전날 밤늦게까지 호텔방 창문을 때리던 태풍도 지나가고, 이른 저녁부터 휴식을 취한 덕분에 호텔을 나서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웠다. 전날 오후에 걸었던 이상한 유흥주점 거리를 피하기 위해 버스를 잡아 타고 목적지 근처에 내렸다. 여기는 아파트도 꽤 있고 나름 정상적인 동네였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길가에 가게들도 영업을 하는 걸 보니 유령도시는 확실히 아닌데. 아직도 미스테리다.


@사가 신사(佐嘉神社)


월요일 아침 한가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사가 신사에 도착했다. 나름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신사라 그런지 산속의 오래된 신사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신사가 굉장히 넓다 라고 생각했는데, 들어와서 보니 넓은 부지 안에 사가 신사를 포함해 8개의 다른 절이 모여있었다. 건물도 많고 낮은 담과 문이 여기저기 나 있어서 이게 같은 신사인지 다른 신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가하고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한 바퀴 돌아보기 좋은 공간이었다.


바다나 강을 접한 도시도 아닌데 작은 개울이 많다. @사가 신사


고양이도 많다. @사가 신사


우아하고 가느다란 새도 가끔 볼 수 있다. @사가 신사


@사가 신사


사가 신사 뒤편에 있는 작은 개울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에 갓파(河童) 동상들을 만날 수 있다. 갓파는 물속에 사는 어린이 모습을 한 요정이라고 한다. 갓파 동상마다 설명이 적혀있는데, 까막눈이라 읽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나름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사가 신사에 오면 개울가를 따라 걸으며 보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수전증 주의 @사가 신사


이 갓파의 오른손에는 작은 버튼이 있는데, 이 버튼을 누르면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돌다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버튼은 오른손에 있는데 왼손도 색이 바래져 있길래,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나 하고 왼손도 쓰다듬어 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블로그에서 봤는데, 물이 부족해서 가동이 되지 않을 때는 '지금은 기운이 부족해서 물을 뿜지 못해. 미안.'이라고 적힌 안내문을 목에 걸고 있다고 한다. 마침 길거리에 사람도 없고 은근 재미있어서 네다섯 번이나 갓파의 기운을 뺏고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가 벌룬 뮤지엄


사가 벌룬 뮤지엄은 여행 계획을 짤 때 별로 관심이 안가서 위치도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갓파를 구경하며 개울가를 걷다 보니 바로 옆에 그 뮤지엄이 서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마침 눈에 띄었으니 구경하고 가려고 들어갔는데 마침 휴관일이었다. 휴관일인데 기념품 가게는 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실내에 설치된 3층 높이의 알록달록한 열기구도 볼 수 있다. 그냥 여기까지 올 거면 검색해보고 휴관일이 아닌 날에 맞춰서 오자.


45m에 달하는 긴 다다미 복도 @사가 성 혼마루 역사관(佐賀城本丸歴史館)


@사가 성 혼마루 역사관


사가 성 혼마루 역사관은 17세기에 지어졌다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사가 성 일부와 혼마루 저택을 2004년에 복원한 곳이다. 내부는 낮은 건물 몇 채뿐이지만, 아직 남아있는 성벽을 봤을 때는 그 당시 사가 성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복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백 년이 지난 건물 자체의 느낌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백 장의 다다미가 깔린 긴 복도나 거실, 수많은 방들, 그리고 주춧돌이 있던 자리에서 옛 건축 양식의 느낌을 한껏 구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이 큰 규모의 역사관이 입장료가 무료인 데다가 짐 보관이 가능한 사물함,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대여, 우리나라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한 직원분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관 내부도 물론 좋았지만 관람객을 위해 갖추어진 편의시설들, 그리고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한국어 관광 안내도까지 챙겨주며 나가는 길까지 배웅을 해주던 친절함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


@03COFFEE


여행하는 내내 하루에 두세 번씩 카페에 들렀는데, 그 카페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사가 성 혼마루 역사관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고, 나중에 보니 역사관에서 받았던 사가 관광안내도에도 나와있는 카페였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든 동네인데도 내가 앉아있는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인테리어와 드립 커피 맛도 훌륭했다. 바(Bar)도 카페 한가운데에 개방되어 있어 구경도 실컷 했다.


@조나이(城内)


멀리서 보고 옛날 군사기지인줄 알았는데 체조경기장이었다. @조나이(城内)




친한 선배가 추천해주신 우동집. 이 날 저녁에 먹고 다음날 오전에 또 갔다. @웨스트우동(ウエスト)


미스테리한 사가를 뒤로하고 마지막 밤을 보낼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우동집에서 약간 이른 저녁을 먹고도 해가 지지 않았길래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미야지다케 신사(宮地嶽神社)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퇴근하는 회사원과 학생들 사이에 끼어 지하철로 1시간을 달렸다. 후쿠마(福間)라는 역에 내려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안 온다. 날씨는 쌀쌀해지고 하늘도 어두워지는데. 그렇게 20분을 기다려 기다리던 버스를 탔는데 웬걸. 버스가 이상한 길로 간다. 구글 지도와 블로그를 찾아가며 몇 번을 체크하고 알맞은 버스를 탄 것이었는데. 그렇게 마지막 날 저녁이 지나가버렸다. 그냥 남들 다 가는 모모치 해변(ももち海浜)이나 갈 걸.


@하카타 역


@스미요시(住吉)


@캐널시티 프랑프랑(Francfranc)


@캐널시티


@스미요시(住吉)


아쉬운 마음에 하카타 역 주변 쇼핑몰과 캐널시티(キャナルシティ)를 구경했다. 캐널시티에 직접 가보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후쿠오카에 오면 캐널시티를 들르는지 이해가 됐다. 쇼핑이 목적이라면 캐널시티 안에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한국에는 없는 매장들도 많고. 그래서인지 한국인이 정말정말 많았다.




오호리(大濠) 공원에는 산책하는 시바견이 있고 @오호리 공원


거북이도 있고 @오호리 공원


밥 먹는 참새도 있고 @오호리 공원


큰 새도 있고 @오호리 공원


조심스레 허락을 맡아 사진을 찍고 아이 엄마에게 보여드리니 정말 좋아하셨다. @오호리 공원


7일간의 여행 마지막 날. 이 날 가려고 했던 카페들을 첫날에 모두 다녀와서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느지막이 나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대충 동선을 짰다. 그래 봐야 오호리 공원과 그 주변을 걸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라 마지막 날이 되자 약간 지친다는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그래서 여행 내내 가방 깊숙이에 잠들어 있던 이어폰도 끼고 햇살 아래서 (생각보다 정말정말 넓었던) 오호리 공원과 그 주변 주택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오호리 공원 내 일본식 정원


우리에게는 전범인, 2차 세계대전 참전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는 곳이다. 주의 @고코쿠 신사(縣護國神社)




오늘은 열었군 @파파라이라이(papparayray)


2층에 마련된 대기공간 @파파라이라이


첫날 찾아갔다가 굳게 닫힌 대문만 구경했었던 파파라이라이에 다시 찾아왔다. 식당도 아니고 카페가 예약을 받고 한 층을 대기공간으로 쓰다니. 도대체 어떤 카페인지 궁금해서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듣자 하니 보통 오픈 직후에는 예약자들로 모든 테이블이 꽉 차기 때문에 예약 없이 오픈 시간에 찾아갔다가는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면서 카운터에 예약 전화를 부탁했는데 이미 예약이 꽉 찼다고까지 했다. 오호리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 오픈 시간이 2시간 정도 지난 후에 찾아갔더니 다행히(?) 2층 대기공간에서 30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파파라이라이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과 빈티지한 소품들, 세월이 느껴지는 건물까지. 홀 한가운데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가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시켰던 커피와 케이크 맛은 그저 그렇다고 느꼈는데, 카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대부분의 테이블에서 브런치 메뉴를 먹는 걸 보니 브런치 맛은 좋은가 보다.


@아카사카


주인이 있는 나무인가? @후쿠오카 성터


@후쿠오카 성터


커피를 마시고 나와 근처에 위치한 후쿠오카 성터에 갔다. 성터 주변으로는 마이즈루(舞鶴)라는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오호리 공원까지 합하면 그 크기가 여의도 절반이나 되는데, 그런 공원이 후쿠오카 한가운데에 조성되어 있다니. 참 부러웠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며 기분 좋게 걸었더니 무계획이었던 하루가 알차게 채워진 것 같았다.


이렇게 동네마다 야구장이 있으면 오타니 같은 선수가 나오는 건가 @롯폰마쓰(六本松)


후쿠오카에서 굳이 기차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이런 주택가를 볼 수 있다. @롯폰마쓰


@데이즈 컵 카페(DAY'S CUP cafe)


이번 여행의 마지막 카페. 주택가를 걷다가 하얀 벽이 마음에 들어서 들어갔다. 꽤 나이 드신 사장님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나가사키에서 갔던 남반차야 사장님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카페를 오픈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번화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데 가끔씩 한국인이 찾아오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1층은 작은 규모의 카페이고, 2층에는 여러 포장지를 파는 듯한 가게가 있다. 바 안쪽에 가정집이 있는 걸 봐서는 2층 가게는 다른 식구분이 운영하시는 듯했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천수각으로 @후쿠오카 성터


후쿠오카 공항이 가까워서 들어오고 나가는 비행기를 자주 볼 수 있다. @후쿠오카 성터 천수각


마지막 노을 @후쿠오카 성터 천수각


후쿠오카 성터 천수각에서 오호리 공원 쪽을 내려다보면 큰 호수와 나무들이 있고 그 뒤로 다시 건물들이 보인다. 그 위로 서서히 짙어지는 주황빛 노을까지. 여행 마지막 저녁에 나름 잘 어울리는 광경에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안녕 @오호리 공원


여행을 마치고 이 유치한 여행기를 쓰면서 내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됐다. 사진? 힐링? 일상 도피? 아니면 그냥 무념무상? 이번 여행은 지난 4월 오사카&교토 여행보다 길었던 만큼 가방은 2배쯤 더 무거웠지만, 마음은 4배쯤 더 가벼웠던 것 같다. 걸음은 갈수록 더 느려졌고, 문서 파일로 정리까지 해놓았던 여행 계획표는 언젠가부터 열어보지도 않았다. 일상에서도 느긋하고 별 생각이 없을 때가 많지만,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더 큰 여유를 가지니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 말하고 듣고, 한가한 동네에서 보고 느끼는 익숙함과 새로움. 그 중독성에 다음 여행을 갈망하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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