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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왕 Feb 21. 2024

다시 한번 삶의 위기 앞에서

좋고 싫음의 문제를 넘어서

13개월 만에 다시 복귀했다.


그동안 이 넙데데한 흰 화면이 그립고도 생각났었다.



그럼에도 브런치에 돌아오지 않았던 까닭은...

스스로에 대한 다른 회고 방법을 찾은 것도 있겠지만

이곳에 글을 남기는 게 괜스레 남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슨 대단하고 감명 깊은 이야기를 쓴다고 난리를 치는 것일까...


발단은 13개월 전, 내 글을 잘 읽어주는 아주 친한 지인의 말에서 시작됐다.


"음.. 글을 잘 쓰긴 쓰는데,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쓰는 것 같아."

"그런 글보다는 좀 밝은 이야기들로 써보면 어떨까?"

"글 분위기가 너무 쳐지고 다운되는 것 같아."


정확한 워딩은 다를 수 있으나,

내 기억에 각인된 말은 위와 대동소이했다.


그저 나름 편하게 힘 빼고, 손 가는 대로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내가 이렇게 쓰는 글이 잘못된 걸까?'

'지인들에게 괜히 브런치를 쓴다고 이야기를 했나?'

와 같은 오만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그 뒤로도 지난 13개월 동안 온갖 우당탕탕 지지고 볶고 하는 일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브런치도 꺼려지고, 글쓰기도 꺼려져서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나름 어떤 모습을? 내 글을 통해서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한테 보이고 싶었던 것도 있다.


내가 글을 통해서 진실되고 싶었다기보다,

내 글을 통해서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면 왜 돌아왔냐?


오늘 문득 죽음이라는 놈이 생각보다 가까이 왔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초에 당뇨 판정을 받고 나름 위기감을 느껴서 여러 노력을 해서 건강을 되찾았지만,

또 방심하는 틈을 타서 음식도 막 먹고, 야식에 온갖 달고 짜고 매운 것들을 가리지 않고 먹게 되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다가 말고 다시 몸 형태가 배둘레햄으로 원상복구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날로 갈증이 심해져서 물을 하루에 정말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자주 들락날락한다.

밤에만 7-8번을 깨서 화장실을 갈 정도이니... 괴롭다.


보름 전부터 몸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무기력증이 계속되고

몸에 미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몸이 어질어질한 상태가 계속된다.


하다 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내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체온을 재보니 정상이었다.


의사가 채혈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진단이 나오는데

현재 증상으로는 아주 높은 확률로 당뇨일 거라고 했다.


급하게 외근이 끝나고 저녁 늦게 방문한 내과병원이라서 채혈검사는 거절했다.

다음날 회사 근처로 방문하기 위해.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 있어서 일을 보다가

어쩌다가 내 건강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에 나름 슬림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 었는데, 실상을 이야기했다.


최근 갈증과 이뇨 증상이 너무 심해졌고 

그만큼 물을 많이 섭취해서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 보이는 거라고.


어른들이 많은 자리어서 그런지 걱정과 관심 섞인 잔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먹는 거를 채소 위주로 잘 먹고, 결명자 차도 잘 챙겨 마시라고 한다.


바로 컬리 주문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가지 열받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중요한 업무소통을 마치고 나서

동생 전화가 와있길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최근 큰 그림 작업을 의뢰받았는데 시간 내 완성하지 못해서 망쳤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비슷한 점이 있다만, 동생이 뭔가 일을 하면 특정 부분에서 병목현상이 생겨서 일을 잘 진행하지 못한다.


듣기 싫었겠지만, 그 부분을 다시 후벼 파면서도

이 정도면 이해가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이야기를 해줬다.

너는 엄청 뛰어난 셰프인데 딱 한 과정을 못 해서 음식을 다 태우는 셰프라고.

음식 재료도 뛰어나고 손질도 뛰어나고, 모든 프로세스가 완벽한데,

오븐에만 음식이 들어가면 계속 쓸데없이 불이 활활 타오를 정도까지 오븐을 뚫어져라만 본다고.


그렇게 해서 어떤 음식이 제대로 완성되겠는가? 다 태워버리지...

그런 제 딴에 괜찮은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동생한테 잔소리를 시전 했다.

실제로 동생이 뛰어난 그림 작가라서 여기저기서 인정을 받곤 한다.

진심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딱 못하고 있는 부분만 짚어서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혹여나 이 이야기도 넘겨버릴까 봐 반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오라버니 얘기 잘 새겨듣고, 잘 기록해 둬라. 언제 훅 갈지 모른다."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살짝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 순간 알아챘다.

나 스스로도 정말 젊은 나이에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최근 몸이 정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겁이 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다시금 삶과 죽음이라는 깊은 주제를 살갗으로 더 가깝게 느끼게 된 와중에

지금 하는 이런 생각이라도 어딘가 적어두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주건 말건

그냥 쓰고 싶다는 본능이 작동했다.

그 본능은 마치 삶에 대한 집착과 본능과도 어딘가 흡사해서

누가 대 글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직선으로 흰 눈밭을 내달리고 싶은 순수한 욕망처럼

문득 다시 브런치로 나를 향하게 만들었다.


다시 브런치를 지우고 새로 만들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조차 쓸데없는 허울을 따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면 나를 구독해 준 분들, 지인들 등이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앞으로 내 글이 혹여나 보이든

궁금해서 직접 보게 되었든


브런치 밖에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나에게는 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럴 필요도 없을 수 있지만, 그리고 약간은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직 사람들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지만


그냥 삶을 탐닉하는, 순간을 탐닉하는 나로서 여기에 그 나를 쏟아내고 싶다.


흰 화면과 나 사이에 점멸하는 이 작대기에서 순간이, 생명력이 그 본능대로 역할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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