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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y 06. 2024

이건 알바 사기얔

#일기

세상이 온갖 잡사기의 너저분한 좌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당하며 체감한다. 전세 사기에 이어서 알바 사기라니. 맞다, 나 아직 삼재지? 히히!


영상 한 건을 제대로 후려침 당했다. 촬영 알바인 줄 알고 갔더니 현장 스크린 중계에, 유튜브 라이브에, 스케치 촬영에, 올려야 하는 편집 영상이 4건. 업계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냥 4시간 동안 카메라 앞만 지키고 있는 간단한 라이브 알바랑 동일한 가격이라 했다. 하! 그러나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 건을 계약했을지도 모른다. 대출로 대출 이자를 막아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최소 업체에 의뢰해야 하는 사이즈를 장비까지 알아서 해결하라, 헐값에 1인에게 후려치는 것도 모르고. 젠장. 도대체 '인생 수업 치고'라는 손해는 언제까지 봐야 되는 건가? 뺨대기가 맵다. 위장도 맵다.


당일에는 의미 없이 새벽같이 일찍 불러놓고 행사는 리허설도 없이 엉망진창인 데다가 물도 한 모금 안 주고 대뜸 하대하며 이러라고! 저러라고! 아랫사람 부리는 뽄새가 심히 꼬장꼬장했다. 점심시간에는 바람같이 사라져서 직접 찾아내서 밥값을 요청해야 했고, 이틀 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카메라 중계석은 당연히 상상도 없었고 제대로 된 행사 관리자없어서 식순이고 뭐고 개판 소판 난장판이었는데 중계 중에 사람들이 카메라를 자꾸 치고 지나가니 쫄랑 나타나서는, 통제 좀 해 통제 좀! 하며 흉신 같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저기요, 카메라 무빙 중인 거 안 보이세요? 니가 통제하시면 되잖아요. 게다가 나 지금 부주의한 하이힐에 흰색 운동화가 밟혀서 심기가 극도로 불편합니다.


알아두세요. 나는 흰색 운동화가 밟히면 공룡처럼 분노하는 인간입니다.


이틀 종일 없는 체력을 비틀어 짜내고 하필 장대쏟아지는 밤에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오면서, 손목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촬영은 기실 몸 쓰는 일인데 이제 몸 쓰는 일은 정말로 못하겠구나, 싶었다. 물론 교대도 없이 장시간 생짜로 고생했으니 정상적인 체력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긴 했다. 이 상황을 전해 들은 업계 지인은, 아마 덩치 큰 남자였다면 그렇게까지 함부로는 못 했을 거라고 말했다. 남자들은 알바비고 뭐고 더러워서 못 하겠다! 깽판 치고 무책임하게 잘들 나온단다. 그것까지 인정하자면 치사량의 분노로 염통이 폭발할 것 같아서 일단은 듣고 감정은 한쪽으로 치워뒀다. 분노를 소분할 줄 아는 나, 대견하다.


현장에서 나랑 똑같이 당한 스냅 알바를 만났다. 행사가 하도 진행이 되지 않아 말을 터 보니 그 친구도 10년 가까이 영상 일을 하다가 지쳐서 백수로 방황하던 중에 경제적인 다급함으로 사기인 줄도 모르고 계약하였고, 오기 싫어서 미치는 줄 알았지만 계약 이행 조건과 선금 지급 등의 요상한 협잡의 그물망에 걸려 울며 겨자 먹기로 온 것이었다. 세부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업계에서 날탕 굴렀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친해져서, 이틀째에는 스치는 찰나에도 틈틈이 같이 욕하고 불평하고 한탄했다. 그 친구는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다가왔고, 업계의 일자리가 너무 불안정해서, 아직 도망가지 않고 현업에 있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여자 선배는 처음 본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실제로 그 동생이 말한 고민들은 모두 빠짐없이 내가 이미 했거나, 하고 있는 고민이었다. 이어서 취업과 귀향, 이직, 진로, 취미, 점집(!) 정보, 창업, 대출, 이사, 결혼, 인생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까지 거의 브리핑하듯이 압축적으로 교환했다. 그 동생이 말했다. "세상에 저랑 똑같은 고민을 하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위로가 돼요."


 방황과 절망의 경력이, 아니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된다는 말이, 나에게 더 큰 위로로 돌아왔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물론 영상 알바비와 주말 알바비를 합해도 한 달 치 전세 이자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남루한 절망 또한 한쪽으로 치워두기로 한다. 비인간 취급 받으며 벌었다지만, 인간적으로 쓰고 싶은 게 돈이니까. 진짜 절망은 다른 데 있다. 이렇게 헐값에 후려칠 중생들이 우리 둘이 아니더라도 줄줄이 소세지로 널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해 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막 부리는 거겠지. 침을 잔뜩 발라서 번들번들한 명함을 받고 토할 것 같았다고, 그 동생이 그랬더랬지. 꼬장꼬장한 영감탱이. 다음 생에는 물고기 밥으로 태어나라. (역시 스님이 되지 않길 잘했다. 불의를 저주하는 나의  못된 자유로움이란!)


단가 후려침 뿐만이 아니다.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잡스러운 알바 전선에 나서보니, 정말 수많은 알바 사기가 판을 치고 있음을 통감했다. (ex. 어플 설치, 블로그 홍보, 가상 머니로 알바비 지급 등) 사기가 무슨 노상이다. 살면서 해본 알바가 스무 가지쯤 될 텐데도, 사기꾼들의 응집된 집단 지성 앞에서 나는 다시 초짜처럼 어벙하게 파닥거렸다. 아, 동생들아, 조심하자! 살아남자! 이 언니가 먼저 사기의 십자가에 못 박였으니…… (가끔 이상한 총대 기질이 있단 말이지…….)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운동화 얼룩을 보면서... 사는 게 투쟁의 연속,이라고는 결코 쓰고 싶지는 않아서 ... 쓰고 싶지 않음과 또한 상투적으로 싸우면서... (편집하다가 급발진하며) 벼락같이 쓰는 틈새 분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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