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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y 01. 2024

이직이라는 시절 여행

#일기

첫 출근의 공포를 벌써 조금 잊어버렸다. 늘 그렇듯 대기중에 가장 불안하다. 그러나 한번 되면 저항하거나 투항하면서, 더러는 수긍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끌려간다. 어떻게든 간다. 물론 그것이 불안의 끝은 아니다. 순간순간 다시 팽팽해지는 마음을 인지하고 풀어놓는 일의 고단한 반복이다. 내려놓는 동시에 다음 내려놓을 것을 움켜쥔다. 내려놓음을 포기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듯이. 내려놓음에 대한 이토록의 정열이라니. 내려놓음에 투항하는 것 또한 날마다의 허망한 전투다.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도 열 군데가 넘는 회사 조직에 몸 담았었다.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아무 경험이나 합산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국 그게 그거라는 평균치에 수렴되는데, 의심스러울 만큼 필연적인 그 회귀 지점에는 필시 어떤 존재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0.


애쓰나 애쓰지 않으나 0으로 가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싫은 모습은 다시 재현될 것이고, 나는 직전까지의 나를 또 번복할 것이다. 나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책처럼 펼쳐졌다 덮어졌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용기 있지 않고, 용기 없지 않다. 나는 착하지 않고, 나쁘지 않다. 잘하다 보면 넘어질 일 생길 테고, 못하다 보면 기댈 일 있을 테다.


다시 0.


들었다가 내려놓는 일의 피로함, 만이 살아있음의 흔적이다. 끊임없이 0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나는 연필을 들고 틈틈이 순간의 단상을 기록한다. 문득 기록하기를 멈출 때, 거대한 피로의 세계가 나를 흘깃 쳐다보는 것 같다. 내가 쓴 글자들도 무심하게 눈을 뜬다. 나는 나의 완벽한 견자가 된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끼적이는 고독한 행위는 잊고 있던 존재를 불러오는 초혼 의식이자 자기 탈환. 또 다른 나,라고는 쓰지 말자. 그 존재를 나는 모른다. 다만 하루하루를 기록함으로써 어렴풋이 그 존재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살아있다는 피로함을 통하여. 피로함의 평균치를 통하여.


거쳐갈 자리에 또 한 번 짐을 풀었다. 거쳐온 자리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이를테면 사무실용 실내화, 거울, 치약, 충전기, 헤드폰, 손목보호대 등. 다만 가방을 풀 것. 한 시절의 착각을 몸으로 살아낼 것. 거기서 거기인 것들을 쓰면서. 계속해서 쓰면서.


안녕하십니까. 장기투숙객입니다. 여기에 묵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들고 나는 일이 잦다. 집도, 회사도, 하루하루의 마음도. 이직이라는 것도 다만 가방을 꾸렸다 푸는 일. 그것에 익숙하다. 2023년 3월 퇴사하고, 2024년 4월 입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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