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500일

혼자, 또 혼자

[다시, 상담일기] 4회차

by 세라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누군가가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드러낸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안전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눈다면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아마도 그는 대답할 것이다.


내게 세상의 기본값은 사기꾼이자 난봉꾼이다. 막상 떠올려 보면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네요?" 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사람? 모르겠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믿지 못하거든요……. 이유가 무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을 또 하고, 허공을 쳐다봤다. 믿지 못하거든요…….


"저는 제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공격적이라고 느껴요."

"그런데 제가 먼저 다가가는 건 더 힘들어요."

"자기 멋대로 잘해주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멋대로 등돌리더라고요."


나를 안전하다고 느끼고 자신을 투명하게 열어보이는 사람에게조차, 나는 마음을 열지 못한다.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는 못한다. 일부러 숨기는 건 아니다. 내 정신이 그쪽 방향으로는 작동을 하지 않는다. 귀납적인 불신인지, 선천적인 불능인지 이제사 모르겠다만…… 어쨌든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조금 피곤하다. 세상이란 자는, 내게 말이 너무 많다. 그만, 좀 그만, 나는 혼자 있고 싶다. 무릎 아래, 비빌 언덕에서, '같이, 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또 혼자' 있고 싶다. 고독 위에 고독을, 쌓아두고 싶다.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들이 싫어요."

"말을 세게 하는 사람은 뭐랄까, 무서워요. 아무리 농담이라도요."

"제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거절하는 건 좀 힘들어요."

"둘러대는 것도 거짓말이면 잘 못 해요."

"웬만하면 싫어도 해요."


이런 모양의 마음이 만들어진 것은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얼마나 참으면서 살아온 건지, 그러나 앞으로는 무엇을 얼마나 참지 말고 살라는 건지, 이래도 저래도 피곤하기는 매한가지인데. 내가 느끼는 것은 당황스럽게도, 분노다. 고요하고 내향적인 여인, 사실은 늘 화가 나 있다.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좀 피해의식인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피해 보는 세상에서, 나는 늘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 역시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유가 다르다고 했다. 길 가다가 무례한 사람이 시비를 걸면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그것이 나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데 저는 화가 나요."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요."

"어른들이 더해요. 그러고도 어른이라고 대접받겠다는 거, 화가 나요.

"저는 차리리 싸우고 싶어요. 품격이고 뭐고, 부당한 것에 화가 나요. 하지만 막상 당면하면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해요. 사소한 시비가 아닌 중요한 사건에도 저는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어른들에 대한 나의 분노에 선생님은 안타까운 얼굴로 동조를 해주셨다. 맞아요, 어른들이 더한 거, 맞아요. 그러자 할 말이 없어졌다. 시선을 떨구었다. 선생님은 조용한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거나, 도시에서 살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여러 사연들을 들려주셨다.


"선생님, 그런데 저는 에너지도, 추진력도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내 삶은 굳이 따지자면 소위 말하는 커리어 우먼에 가깝겠지만, 항상 내몰리듯, 어쩔 수 없이 이력을 쌓아왔다는 생각이……


뭐였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것은. 앞으로는 내 힘으로 나를 쌓아갈 수 있을까. 나 위에 나를.

.

.

.


"세라 씨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예요."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혼자 있는 게 힘든 사람이 있는 거예요."

"조건 다 내려두고, 나는 어떻게 살면 좀 편하겠어요?"

"나는 바뀌지 않아요. 내게 더 잘 맞는 형태의 삶을 찾아봐야 해요."

"그래도 나를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아, 그러나 나는, 그만 피곤해지고 말았다.


지독하게 피곤한 삶이라는 염증이, 나를 다그치지도 나를 위로하지도 못하게 한다.


끝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선생님은 1년 이상 깊이 있게 상담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아쉽게도 이 프로그램은 6회가 끝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믿지 못하는, 믿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