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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n 27. 2024

달 뜨다


보고 싶습니다. 말갛게 갠 하늘에 점점이 박힌 고추잠자리가 보고 싶습니다. 바람은 덩달아 시원할 터입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고서 먼 마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마를 맞댄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난다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겠지요. 두 눈 가득 담을라치면 뭉근하게 가슴이 데워질 터입니다.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 잠든 고향의 풍경입니다. 풍경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그리운 사람들 서성이다가 마당을 쓸고 누렁소를 몰았습니다. 누구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고 또 누구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겠죠.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가마솥은 연신 허연 김을 뿜어냈습니다.

가슴속에 사는 것들은 뜬구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산산이 흩어지고 없습니다. 골짜기 가득 들어찼던 안개가 햇살 한 줌에 사라지듯 그리움도 그랬습니다. 헛헛한 가을바람이 불었지요. 봄날의 아지랑이라거나 가을날의 서릿발 같았습니다. 잡으려고 애를 쓰면 그만큼 멀리 달아나고야 맙니다. 짧은  낮잠에 깃든 짧은 꿈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허무하고 아쉽지요. 그렇더라도 보고 싶은 마음 잔뜩 띄워놓고서 얼굴을 그렸습니다. 잘 지내지? 안부도 묻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반가워서 덥석 손이라도 잡아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와락 끌어안고 심장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웠던 만큼 반가움도 컸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지요. 에이, 그러지 말 것을.... 햇살에 부서지는 안개처럼 찰나지간에 사라지고야 말더군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였습니다. 마음에서 솟아나 넘실거리는 것들은 늘 그 모양입니다. 생각의 한계이고 상상의 아픔입니다.

꽃순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목소리도 듣고  싶었고 커피 한 잔 사이에 두고 수다도 떨고 싶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 떠오르는 생각이 아닙니다. 아득히 잊혔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도 아닙니다. 언제나 머리에 띄워놓게 되는 생각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가득 들어차는 얼굴입니다.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떨쳐내지 못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무심히 어둠이 내리고 별이 반짝입니다. 그리움 둥근달처럼 떠올라 동산을 밝히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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