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름 뒤에 붙는 제형의 비밀 - 1
"약사님 타이레놀 하나 주세요."
"그냥 타이레놀 드릴까요, 타이레놀 ER로 드릴까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E.. ER주세요"
비슷한 상황 겪어보신 적 없나요? ㅇㅇㅇ서방정, ㅇㅇㅇ장용정, ㅇㅇㅇ연질캡슐 뭔가 많이 보긴 한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자세히 알아 본적이 없지 않나요? 약 이름 끝에 붙는 이런 알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단어들. 이게 무엇인지 하나씩 파헤쳐 보겠습니다. 일단 자주 볼 수 있는 제형 4가지를 먼저 살펴볼게요.
서방정은 [서방출성 정제]의 약자 입니다. 약이 서서히 방출되는 정제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ER, SR, XR등으로 표기하는데 모두 서방정과 같은 의미입니다. (ER : Extended Release, XR : eXtended Release, SR : Sustaind Release)
일반정제의 약효가 4시간 지속된다면, 천천히 오랫동안 방출되는 서방정은 8시간 약효가 지속되는 식이죠.
실제로 타이레놀의 경우 일반정제는 500mg 용량으로 4시간 정도의 약효를 나타내는데 비해, 타이레놀ER정은 650mg용량으로 약 8시간의 약효를 나타냅니다. 용량은 두배가 되지 않았는데 약효 지속시간은 두배가 되죠.
일반 정제를 ER정으로 변경하면 1. 약효지속시간이 늘어나고 2. 복용 횟수가 줄어들어 복용이 편해지고 (복약순응도가 높아집니다.) 3. 약물의 혈중 최고 농도가 낮아져서 부작용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1, 2번은 쉽게 이해가 될텐데 3번은 좀 아리송 할 겁니다. 이부분은 약물의 흡수와 혈중 농도에 관한 다음글에서 자세히 정리 해 보도록 할게요.
[장용정]은 [장에서 녹는 약]입니다. 약은 입을 거쳐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의 순서로 내려가게 되는데 입, 식도, 위에서는 녹지 않고 장에 도착해서야 약이 녹아나오는 형태의 약을 장용정이라고 합니다. 입에서 식도까지는 중성 (pH = 7) 위는 산성 (pH = 2~4) 장은 약염기성 (pH = 8)이기 때문에 산성, 중성에는 녹지 않고 염기성이 되면 녹는 코팅을 입혀서 만듭니다.
장용처리를 하는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경우를 두가지 살펴볼게요.
먼저 아스피린 장용정입니다. 아스피린은 해열, 진통제의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혈전을 용해시키는 목적으로도 사용됩니다. 아스피린의 대표적 부작용 중 한가지는 위에 자극을 줘서 속쓰림이나 위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혈전 용해 목적으로 복용하는 환자들의 경우 매일 복용을 해야하기 때문에 위에 자극이 꾸준히 이어 질 수 있는 문제점이 있죠. 그래서 아스피린을 장용코팅 해버리면 위에서는 전혀 작용하지 않고 장에서만 흡수되기 때문에 위에 미치는 부작용을 감소 시킬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흔히 볼 수 있는 장용처리된 약은 바로 유산균제제입니다.
유산균은 장에 우리 몸에 유익한 균을 공급해서 장기능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는 약이죠. 유산균은 말 그대로 "균" 이기 때문에 위 처럼 산성이 강한 환경에서는 많은 수가 죽어 나갑니다. 장을 목표로 내려가던 균들이 위에서 다 죽어버리면 유산균약을 먹는 이유가 없어지죠. 그래서 유산균제제는 장용 캡슐을 이용하거나, 분말 상태에서 장용 코팅을 입혀줍니다.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장까지 살아서 가는 닥*캡슐"이 이러한 원리를 적용한 제품이죠.
(아무리 장용처리를 했다고 해도 위가 덜 산성인 공복에 복용하는것이 가장 좋습니다.)
장용정과 서방정은 방출 조절이 되어있는 약이기 때문에 쪼개서 복용하시면 장용, 서방 효과가 사라집니다. 임의로 쪼개서 복용하지 마세요.
당의정은 한자 뜻 그대로 [당으로 옷을 입힌 정제]입니다. 설탕코팅을 했다고 보시면 쉽습니다. 주로 냄새가 역하거나 맛이 고약한 약의 경우 당의코팅을 입혀주면 냄새, 맛을 모두 숨길수 있기 때문에 맛이나 냄새가 좋지 않은 약에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약이 바로 정로환과 정로환 당의정입니다. 크레오소트라는 성분 특유의 맛과 냄새 때문에 복용이 힘들어하는 환자가 많아서 당의 코팅을 해서 새로 발매한 약이 정로환 당의정입니다. 맛과 냄새(솔직히 냄새는 그대로 나요;;)가 차단되고 표면이 매끌매끌해서 복용하기에 훨씬 편하죠.
당의정은 특별히 방출을 조절하거나 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다만 약에 처리하는 코팅중에는 당의코팅이 두꺼운 편이라 쉽게 뭉쳐지지 않는 알약을 만들 때 껍데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약들은 반으로 쪼개면 와르르 바스라져 버립니다. 이런 약이 0.5정 처방으로 나오면 약사는 웁니다. 두개의 0.5정을 만들기 위해 3-4알의 약은 가루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이건 그냥 여담입니다. 우는 소리 한번 해보고 싶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캡슐 하면 떠올리는 그 캡슐은 경질 캡슐이라고 합니다. 아랫뚜껑에 가루로 된 약을 담고 윗뚜껑을 닫는 형태입니다. 캡슐은 또 한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연질캡슐입니다.
요즘은 감기약부터 진통제까지 다양한 약들이 연질캡슐로 나오고 있어서 많이들 익숙한 형태일겁니다.
연질캡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내부에 액체를 채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부에 액체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 됩니다. 약이 붕해 된 후 소화액에 녹는데에 (용출) 걸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흡수가 빨리 되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감기약 부터 진통제까지 너도나도 기존의 약을 연질캡슐로 재 발매 하는 것이 제약계 몇년간의 트랜드였습니다. 기존의 약을 연질캡슐로 리뉴얼 하는 경우 효과가 빠르다고 하여 Q라는 알파벳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 이름에 Q가 있다면 뒤에 뭐가 붙는지 안봐도 '이거 연질캡슐이겠구만' 하고 예측도 가능하죠.
또 한가지 장점은 바로 기름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메가3를 복용하고 계신가요? 복용 중인 오메가3 약을 한번 기억 해 보세요.
오메가3는 정제 어유를 통해 약으로 섭취합니다. 말 그대로 생선 기름입니다. 기름을 담을 수 있는 제형은 연질캡슐이 유일합니다. 집에 있는 오메가3 캡슐을 칼로 한번 쿡 찔러서 안에 있는 액체를 손으로 만져보세요. 미끌미끌 할 겁니다. 그리고 따라오는 생선비린내는 책임 지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기름을 담을 수 있다는것의 이점은 지용성 약물을 기름에 녹여서 넣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성분 중 하나가 비타민 A와 비타민 D입니다. 지용성 비타민인 A와 D는 물에는 잘 녹지 않기 때문에 기름에 녹여 놓은 상태로 연질캡슐에 채워버리면 훨씬 흡수율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