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을 고민할 필요 없기에--
멀리 다녀온 이와 통화를 했다
멀리라지만 지구 안이다 오히려
전화선도 없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우주를 향해
우리들의 이야기는 더 너울너울 날아가
별빛이 될 것이다
혼자만 다녀오는 일이 미안해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늘을 덮고 날아온 듯
혼자만의 피곤이 묻어 있었다
깨달음의 뒤에는 깊은 잠이 필요한 법
멀리 다녀오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누군가는 결국 자기라고 했다
그래서 새들은 해마다 멀리 바다를 넘는구나
외기러기는 밤마다 저 홀로 나는구나
(주)실천문학
실천시선 209
박철 시집 『작은 산』2013
61쪽
나는 그래
꿈을 자주 꾸는 만큼 생각 고리를 끊어내는 일에 상당한 에너지를 쓰며 산다.
꿈 혹은 생각은 짧은 것 같다가도 밑도 끝도 없이 길어서,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은 1초도 되지 않는 영화 타이틀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서 봐야 하는 일이다.
꿈의 장르도 생각의 연령기준도 다채로운 만큼 위태롭고
영화의 분위기나 사건들을 결정하고 엮을 때마다 불안하다.
불안이란 악인과 매일 싸우는 느낌이랄까.
불안이란 말로 퉁쳤을 뿐,
그 안에 든 수백 가지의 어두운 감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역시 '시작이 반이다!'란 말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난 늘 이 말을 되새기며 제목이 화면에 뜰 때마다
앞으로 있을 오늘의 장르와 연령을 설정하곤 한다.
누가 아무리 뭐래도 시작이 반인 건 확실하고,
시작은 늘 흥미를 불러일으키니까.
무엇보다 제목만 보는 삶은 '내'가 매일 직접 확인하는 일이라 놓치기 싫다.
아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멀리 다녀온 이'와 '지구 안'에 있는 자와 '우리들의 이야기'는
'별빛이 될'거란 확신과 함께 '혼자만의 피곤'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시는, 영화는 흘러간다. 모든 준비를 끝낸 그도 통화를 끊지 않는다.
'누군가'의 정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강도와 깊이만 다를 뿐,
주인공은 결국 '자기', 본인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풀 필요는 없으나,
'멀리 다녀오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누군가는 결국 자기라고 했다'란 구절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내 영화가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눈을 깜빡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셀 수 없을 만큼 깜빡거려서, 결국 셀 수 없을 만큼의 작품을 보고 만다."
주인공을 고를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외로움을, 나를 품고 산다.
그 결과, 무엇을 찾고 있고 또 그리워하는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난, 나를 사랑하는 데 기꺼이 에너지를 쓴다.
피곤하고 외롭고 힘들고 벅차도 모두가 그럴 거라 믿는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일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끝까지 용납하지 않는 일이니까.
타이틀이 멋진 영화(들)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니
마음이 쏠쏠하게 쓸쓸하고 짭짤하게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