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피었던 꽃이
일몰과 함께 황급히 꽃잎을 접으며 캄캄하게 문을 걸어 닫는다 꽃이,
꽃 자신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잠수하듯이
숨을 참고 다년생 구근 속으로 내려가는 저녁
눈알을 백팔십 도 굴려 가신의 내면을 골똘히 추적하는지 하얗게 셔터를 내리고
임시휴업 중인 켄터키 후라이트 치킨 집 앞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화분 옆에 한 사내가 쓰러져 심하게 떨고 있다
수시로 일어나는 모반의 내부 참극
자신에게 완전히 유린당했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의 비틀린 사지를 주무르는 동안
소용돌이치는 몸속의 거센 물살 속에서
익명의 또 다른 나와 사투를 벌이는지
아니면 이미 뻣뻣하게 굳어버린 자신의 사체를 더듬으며 울부짖는지
허공에 뻗은 그의 손이 자꾸 움찔거린다
서서히 고요해지는 심연 속에서 오리무중
거품이 입가로 방울방울 올라오고
마침내 낯선 사내가 생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참았던 숨을 길게 내뿜는다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어두운 화분 위로 솟은 가는 꽃 대궁 속에서
누군가 감쪽같이 제 손으로 제 목을 조이며 파르르 떨고 있다
(주)실천문학
실천시선 180
이덕규 시집 『밥그릇 경전』2009
46-47쪽
나는 그래
우리란 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인식하듯,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을 구분하듯,
기쁜 일과 즐거운 일을 나누듯,
어둠은 물론이고 빛 안에서도 떨지 않고 웃는 법을 수련하듯.
나를 내가 찾아 나서는 형태, 현상, 현실.
나를 위한 계획이자 결정.
발단이 뭘까 생각해 보면 문이 없는 지하실이 먼저 떠오른다.
살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지하실 벽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 시작한 것 같이.
음침하고, 고되고, 또 한없는 외로움이
어렵게 뚫은 구멍을 다 메우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줄기 빛을 눈으로 잡아 영구히 담아야 하는.
필사적인 탈출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그런, 꽃 속으로 들어가는 꽃.
하나를 꺾고 돌아와도
다른 하나가 지체 없이 또 꽃을 피우고 마는,
폭력적이면서도 당연한 흐름이라 또 순간 안도하고 마는.
찰나의 고통과 찰나의 안온함이 공존하는 자아의 세계 같은.
이쯤에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다.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는 일인가.
그냥 나를 발견하는 일인가.
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는 반복이
내 안에 내가 너무나도 많아서라고
슬쩍 귀띔해 주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