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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Oct 18. 2024

노래의 기원 / 복효근 시인

    노래의 기원   /   복효근 




    처마 끝에 한 무리 참새가 몰려 있다

    어미 새는 장독대 근처 매화나무 가지에서 아이들을 부르고

    부리에 노란 테두리가 채 가시지 않은 새끼들이 

    이제 갓 꽃을 지운 매화나무 가지를 향하여 뛰어내린다

    

    아까부터 고양이 한 마리

    처마 그늘 깊숙한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참새는 알까

    처마 밭 그림자가 지옥의 아가리라는 것을


    지옥은 늘 낙원과 입구를 같이 쓴다

    다만 낙원엔 출구가 있을 따름인지

    가까스로 몇 마리 낙원을 향하여 허우적거린다

    

    젖 먹던 힘이 있을 리 없는 새에게

    죽을힘을 다하여 제 몸을 매화 가지에 옮겨놓는

    필사의 낙하가 낙화처럼 애절타


    모든 첫 비상은 추락이었을 터

    그러나 추락이 모두 비상은 아니었다

    바람도 없는데 매화 한 그루 잠깐잠깐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겨우 새 몇 마리 받아냈을 뿐


    매화의 손이 놓친 어린 참새 몇은 어디로 갔을까

    새는 지옥 1미터 남짓 상공에서

    비명처럼 낙원을 노래한다

    

    노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주)실천문학

실천시선 207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2013

126쪽-127쪽






나는 그래


참새가 처마 끝에서 첫 비상을 준비한다.
곧 추락한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성공과 실패의 비율을 열심히 따져봐도
다음 뜀박질의 결과는 예상할 수 없기에
'낙화처럼 애절'하다.

애절, 특히 애절에 온 마음이 휩쓸리듯 쏠린다.
애절의 탈을 쓰고 등장한 초조함 때문이다.

나를 위한 방법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희미해지는 와중에
비상(추락)을 위해 뛰어내리는
나를 위한 매화나무를 찾아야만 하는데. 

나를 알리는 과정 안에 대체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걸까.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포기해 버렸을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제쳐두고, 
왜 그토록 입만 요리조리 벌리고 있던 걸까.

처마 끝에 서서 아무리 열심히 자기소개를 해봐도 
밑에 숨은 고양이에게 보이지 않으면 뛰어도 소용없고,
고양이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면 비상도 추락도 불가능하고,
겨우 몇 마리 받아낸 매화나무는 절대
이 사실을 소리 내어 알려주지 않으니 
초조함인지 애절함인지 구분할 수 없고. 
당연하게도 '처마 밑 그림자가 지옥의 아가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도 체감할 수 없고.

참새는 안다, 너무나 잘 느낀다.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승리의 노래나
힘찬 날갯짓에도 추락하는 패배의 노래를
품을 들여 착각하거나, 척할 필요 없기에.

절망이 온몸을 순회할 때를 기다리며
희망이 온몸을 간지럽힐 때를 고대하며
'비명처럼 낙원을 노래' 해보자.
내 노래의 기원은 내게 있듯
당신 노래의 시작이 당신에게 있듯.

'어디서 비롯되는가' 끝엔 물음표가 아닌 온점이 붙는다.
지옥의 아가리와 비상의 축복을
수없이 드나드는 삶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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