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
가끔 단추를 풀고 채우는 일에 싫증을 느낀다.
눈을 뜨고 감는 순간을 결정하진 않지만,
아침과 저녁을 명확히 구분하는 새벽처럼
홀가분한 동시에 서글프기 때문이다.
누군가 대신 손을 내밀고 눈을 뜨고
발을 구르고 몸을 비비며 강제 아닌 강제로 유도해도
단추는 섣불리, 또 스스로 풀리거나 채워지지 않기에
더욱 기다림과 씨름하는 삶.
새벽을 좋아한다.
정적을 깨우는 시곗바늘의 소리도,
단잠을 앗아가는 휘황찬란한 컴퓨터 화면 불빛도,
그간 한 번도 독점하지 못했던 키보드 촉감도,
단추를 풀고 채우는 데 일조하니까.
물론 새벽은 알려주지 않는다.
애정하는 단추와 덜 애정하는 단추 사이에서
무엇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는지.
눈을 감고 있어도 뜬 것 같고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것 같달까.
(나도 모르게 선택한 결과를 아침에 받아보는 건 나름 재미있다)
어정쩡해 보이지만, 실증을 느끼는 요인은 아님을 고백한다.
어설프고 답답해도 애정을 갖기에 그렇다.
아마, 꽃단추 때문일 거다.
내 안, 어딘가에 자리 잡은 꽃단추 덕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탓에,
내리 흔들리면서도 홀연히 곧은 자세를 취할 줄 아는 결말 덕분에.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은 내 마음을 보아하니,
역시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게 단추가 많'은 듯 싶다,
그 누구도 헤집어 놓지 못하는,
결국 내가 다 풀고 채운 것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