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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Nov 15. 2024

어머니의 손바닥엔 천 개의 귀가 있다 / 이대흠 시인

    머니의 손바닥엔 천 개의 귀가 있다   /   이대흠



    이상하게도 내 집에서는 죽어가던 풀 나무 들이

    어머니의 손에 닿으면 금방 싱싱해졌다

    버리다시피 가져다둔 화분이 열몇 개

    기린초도 상사화도 색 좋은 꽃을 피우고

    진딧물뿐이던 능소화도 꽃을 피워내는 게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어서

    어느날 꽃 만지는 어머니 모습 보고 있자니

    꽃무릇도 상사화도 기린초도 수선화도

    어머니의 검은 손이 닿자 갑자기 명랑해진 아이처럼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해대며 생기를 띠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무어 특별한 게 있을까

    그 검고 갈라진 손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는데

    꽃나무만이 아니라 오이며 호박이며

    하다못해 밭둑에 심어둔 옥수수까지

    어머니 손 닿은 것이 더 잘 자랐던 비밀이

    내 눈에도 보이는 것이었는데

    어머니의 손에는 내 손에 없는 귀가 수백 개

    수천 개 열려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갈라진 손바닥 틈으로

    힘없고 병든 식물의 입들이

    무어라 무어라 쫑알대고 있었던 것

    내게는 입 다물고 말없던 것들이

    검은 손바닥 그 한 많은 귀에 대고

    제 말들을 마음껏 하면

    그 말을 들은 천 개의 귀가

    그것들의 아픔에

    가만 가만히 

    




(주)창비

창비시선 311

이대흠 시집『귀가 서럽다』2010

44-45쪽






나는 그래


내 어머니의 손바닥에도 '천 개의 귀가 있다'.
상사화 꽃대가 자라고 꽃이 필 때마다
그녀의 눈엔 붉음이 들어찬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랑이라 툭 내뱉기엔 너무나 큰 감정이
몽글몽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닿은 것들은, 이들은
'더 잘 자랐던 비밀'을 안다.

'내 눈에도 보이는 것'이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레 드러나는 게 아니기에
누구나 때가 되면 겪게 되는 상황도 아니기에

보이는 것은 사실
보려고 하는 것에 있음을 알기에
나는 그녀의 붉음이 환히 차오를 때마다
끝내 차오르고 마는 투명한,
코끝이 찡한 묵직한 막을 씌워 보곤 한다.

'힘없고 병든 식물들의 입들이'
'내게는 입 다물고 말없던 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귀를, 마음을 열게 하는지

그녀의 손바닥엔
천 개의 귀와
천 한 개의 입이 있다.

나는 그녀가 숨긴 그 한 개의 입이,
상사화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얼마나 '무어라 쫑알'대는지 알고 있다.

역시, 그저 사랑이라 칭할 수 없는
붉디붉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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