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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 Sep 24. 2023

할아버지 첫 제사

2023년 9월 22일 할아버지 첫 제사. 맑디 맑은 날이었다. 지난 몇 일 간 내린 비로 여름의 뜨거움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하늘은 높았고 구름은 하얬고 사방은 선명했다. 목요일 밤 제사라 서울역에서 오후 3시 반 KTX를 탔고 어둠이 가물가물 내리는 오후 6시에 창원중앙역에 도착했다. 삼촌, 숙모, 엄마가 마중 나왔다. 서울 사람들이 오니까 양손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트렁크를 안 열어도 된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놀리는 삼촌의 농담으로 하하호호 웃으며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본 할머니의 낯이 그대로라 좋았고, 자그마한 상을 채운 헐거운 제사 음식, 짝 없이 홀로 선 촛대, 웃음기 없는 할아버지 영정 사진도 웃어 넘길만 했다. 다들 어찌 이리 1년이 빨리 갔는지 놀라워했고 날씨가 좋다며 할아버지가 간 날짜를 너무 잘 잡았다고 칭찬했다. 허나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모두 슬퍼져버렸다. 


뭐라 할 새 없이 눈물부터 툭 났다. 이모와 엄마, 남편이 두루마리 휴지 조각이 묻은 내 얼굴을 쓸어주는 것이 3살 조카 똘순이와 다를 게 없었다. 죽음 앞에 의연한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할아버지를 보내는 경험 전까지 죽음은 내게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동네 초상집에 간 기억이 있다. 늘 드나들던 그 어르신 집 방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붙어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다른 기억도 있다. 남해읍에 할머니 손잡고 자주 가던 팥죽집 옆이 상여집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벽에 걸린 상여와 빨강 자주 파랑 꽃 장식을 보았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팥죽집 거리만큼이나 손닿는 데에서 하는 일이었다. 상여를 본 적도 있다. 아는 할머니의 상여였다. 상여꾼의 노래가 퍼지니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 나갔다. 맨 꼭대기에 있는 우리집에서 그 걸음이 잘 보였다. 대낮이었고 하얀 상여, 알록달록한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물었던 것 같다. “어디 가는 거야?” 할머니는 남해대교 너머 산을 가리켰다. 아마 장지를 알려준 성 싶다. 내 눈에 그 산은 보이는 산이긴 한데 가는 산은 아니었다. 갈 길을 몰랐고 그냥 그 산은 거기 있는 산이 다였다. 죽는다는 건 보이는 산 뒤로 가 더는 안 보이는 거 그 즈음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얕봤다.


엄마도, 이모도, 할머니도, 그리고 나도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어디 갔을꼬.” 서로에게 묻는다. 물론 다들 안다. 할아버지는 작은 관에 담겨 더 작은 상자에 옮겨져 서울 할머니 묘 옆에 묻히고 뿌려졌다. 그렇게 보이듯 안 보이게 됐다. 근데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지난 5월까지 멀쩡하게 같이 밥 먹고 자던 사람이 4개월 만에 없어져 버리다니. 어릴 때 봤던 그 죽음의 모습처럼 고개를 끄덕일 만큼 누구나에게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니 그래도?’하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처 든다. 좀만 더 있다가지. 좀만 더. 죽음은 단순한 사라짐이 아님을 이제 안다.


또 배운 사실이 있다. 제삿날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이 아닌 그 전날로 한다. 온전히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이 사람이 생의 일을 다 한 날이란 인정일까. 돌아간 날은 돌아가신 분도 서글프니 하는 배려일까. 할아버지는 가기 전날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괜한 상상만 한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묘에 한 번 가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랑 꽃놀이도, 단풍놀이도 맨날 다짐만 하고 마는데 이번 건 어떻게든 이뤄야겠다. 상상보다 실천이고 미련보다 기억을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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