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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 Apr 30. 2022

일주일에 한 번, 작은 나 만나기

<큰 나 속의 작은 나> 01

이 글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그 할머니 이름이 당최 생각나지 않아서요. 그 할머니는 저희 할머니의 베프였습니다. 자주 우리집에 놀러오셨죠. 할아버지가 부산이나 서울서 자고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저와 단 둘이 있기가 무서워 그 할머니를 불러 같이 잤다고 했습니다. 매표소 일로 하루 종일 집에 없는 할머니는 저를 목욕탕에서 씻겨오는 일도 그 할머니에게 맡기셨습니다. 저도 할머니 손을 잡고 자주 그 할머니집에 놀러갔던 것 같습니다. 2층 집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애틋한 인연인데 고작 이십 년만에 그 할머니 이름을 까먹었습니다. 글쎄.


그러고 보니 번뜩 번뜩 잘만 떠올리던 유년시절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골목의 빨간 지붕 집은 수정이네 집이고 파란 지붕 집은 대준 오빠네 집이고 누구와 누구는 형제지간이었고 나는 누구와 친했다는 이런 기억을 나름 또렷이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요즘에는 '그랬나? 내가 기억하는  사실 맞나?' 싶습니다. 물어볼 친구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살아계시나 할아버지 86, 할머니 84. “글쎄. 나는 모르겄다라며 눈을 감아버리십니다.


이대로 잊어야 하나, 생각해 내겠다는 의지가 까무룩 꺾일 무렵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물 같이 챙겨주신 나의 공책들. 십여 년 전 경매로 50년 넘게 산 집이 홀라당 넘어갔을 때 살림 대부분을 버렸어도 제 일기장은 제일 앞에 챙겨주셨거든요. 덕분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일기가 할아버지 할머니 집 거실에서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올해 이것을 제대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어 지난 설날에 이 일기들을 창원의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서울의 제 방으로 옮겨왔습니다. 이건 제 자산이 분명합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고 설렁설렁 거짓부렁으로 쓴 글이 있을 지언정 그 또한 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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