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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11. 2020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루카스가 말하는 품격 있는 글쓰기 지침서 

<스타일>의 저자 프랭크 로렌스 루카스는 7개 언어에 정통했던 언어학자이자 고전학자이다. 동시에 문학 평론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며 교수이다. 화려한 언어 능력과 다방면의 이력은 이 책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에서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었을까. 좋게 말하면 다양한 언어를 소재로 풍부한 사례를 글쓰기 소재로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고, 성마른 독자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거창한 사례로 기를 죽이나?"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문학도가 아닌 사람이 이 책을 끝까지 읽기로 했다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만약 '품격 있는 글쓰기 지침서의 고전'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가벼운 마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두어 번 읽기를 중단하고 싶은 위기를 맞을 것이다. 나 역시 책의 말미에 배치된 '영어 산문의 음악성' 부분은 대충 일별하고 건너뛰었다.

이 책은 루카스의 문체 자체가 그가 추구하는 미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고(가디언), 읽는 즐거움과 글쓰기 기술 연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며(타임 앤 타이드), 인용문의 광대한 범위와 적절성이 놀랍다(뉴스 테이츠 먼)는 평가를 받았다. 인용문의 광대한 범위는 숨길 수 없는 이 책의 특징이면서도 영문학, 유럽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꽤 불친절하다고 느낄만한 요소이기도하다. 시공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광대한 인용이 우리에겐 낯선 서양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대한 인용문을 억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 책이 주는 영감과 실용성이 있다.

이 책은 좋은 산문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글쓰기 능력, 특히 문체에 대한 소양을 키우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은 곧 '문체'이다. 한글 워드프로세서에도 스타일 지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땐 글의 '형식'을 말한다. 문체는 내용과 형식을 두루 포함하면서도 글쓰기에서 '본인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특히 '글을 쓰는 방식'과 '글을 쓰는 좋은 방식'에 대하여 관심을 갖자고 한다. 


문체의 가치를 살펴본 저자는 인격은 문체의 기초라는 생각 아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루카스가 말하는 독자에 대한 예의 안에는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원리를 담는다. 그것은 명료성, 간결성과 다양성, 세련성과 소박함 등이다. 그 외에도 분별력과 진실성, 건강과 활력, 직유와 은유, 영어 산문의 음악성이라는 장을 통해 루카스는 좋은 산문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스타일'을 강조한다. 그는 운 좋게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61쪽)라고 운을 떼면서 문체에 대한 자신의 글쓰기 관을 들려준다.

루카스는 
문학에서 문체란 그저 한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문체는 사실상 사람의 됨됨이, 즉 심리적 측면의 사안(67쪽)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글쓰기 책에서도 글쓰기는 삶의 반영이라든지, 열심히 살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든지 하는 작가적 소명의식을 촉구하는 주문들을 많이 본다. 이 모든 내용이 갖는 함축은 글쓰기는 특별한 방법이나 기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삶을 제대로 살아야 정직한 글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루카스는 시종 글쓴이의 '인격'을 강조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인격도 적어도 얼마간은 훌륭해야 한다. 더욱이 속임수는 종국에는 탄로 나기 마련이므로, 글쓴이의 인격이 겉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좋아야 한다. 책을 집필해서 펴내는 사람들은 이따금 본인이 깨닫는 것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본인을 대중에게 드러낸다.(스타일, 69쪽)


작가의 글에서 비열함이나 역정, 옹졸함, 자만심이나 거짓이 묻어난다면, 작가가 아무리 재간이 뛰어나고 글 솜씨가 특출하다 해도 결국 구제받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문체에서 가장 첫 번째 인격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모든 독자를 줄곧 속이기란 쉽지 않다.(73쪽)


그렇다고 해서 '인격수양 먼저, 문체 수련은 나중에' 이런 식으로 도식적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인격은 여러 형태로 길러지지만 그중 으뜸은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 능력이다. 그런데 성찰 능력을 기르는 방법 중 최선이 글쓰기이기도 하다. 좋은 글의 조건이 인격이라고 해서, 인격이 덜 갖추어진 사람은 글도 쓰지 말라는 것은 많은 글쓰기 초심자들에겐 좌절을 안겨주는 말이다. 처음부터 문체의 조건으로 '인격'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책이 무거워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쓰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하는데, 글쓰기는 소수의 독점물이 아닌 까닭도 있고, 타인에게 공표하는 것 외에도 글쓰기가 가진 표현, 소통, 치유, 성장의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루카스는 자고로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몇 가지의 덕목을 제시한다. 명료성, 간결성과 다양성, 세련성과 소박함 등이 그것이다. 


명료성은 작가가 A라고 말했으면 독자도 A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루카스는 대니얼 디포의 말을 인용하여 "바보나 미치광이를 제외하고, 저마다 능력이 다른 평범한 사람 500명을 향해 누군가가 말을 할 때에는 그들 모두가 그 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왜 내가 한 말고 다르게 이해하지?'라고 독자를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해 부족의 원인은 독자가 아니라 작가에게 있다는 뜻이다. 루카스는 언어의 사회적 목적은 의사소통, 그러니까 타인에게 뭔가를 알리거나 일부러 잘못 알리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92쪽)이라 말하면서 명료성을 방해하는 모호함을 질타한다. 


대부분의 모호함은 불필요하고 해롭다. 모호함은 조리가 서지 않거나 사려 깊지 못하거나 생각이 과다하게 넘쳐날 때 생길 수 있다. 겉치레, 허식을 차리거나 형식에 구애받을 때에도 그렇다. ... 개별 문장이 명료하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다. 이 문장들이 명료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물은 혼란 그 자체일 수 있다.(94쪽)


루카스는 아무리 밝게 빛나는 영감일지라도 그 때문에 논지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면 그것을 가차 없이 잘라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95쪽)고 말하면서 이것이 왜 독자에 대한 예의인지를 설명한다. 


사려 깊은 작가는 독자가 숨을 고를 지점을 적당히 여러 군데에 배치한다. 단락이 짧으면 용이성과 명료성을 살릴 수 있다. 그런 단락이 너무 짧으면 그 효과가 미미 해지는 경향이 있고, 독자는 수준 이하의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 다만 의심스러울 때는 단락을 너무 길게 하는 것보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짧게 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97쪽)


작가는 본인의 생각이 뚜렷해질 때까지 생각을 하고 또 해야 한다. 또 그 생각들을 분명한 순서로 배열해야 하고, 짧은 단어, 문장, 단락을 선호해야 하며, 한 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104쪽)

글이 길어진다면 명료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독자에 대한 예를 차리기 위해 명료성에 이어 간결성을 들고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루카스는 간결성의 가치는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경제학이라 보았다. 동시에 간결성은 품격, 힘, 속도를 더할 수 있다(118쪽). 간결한 글에서는 품격과 힘이 나온다. 그러나 또한 민첩성도 선사할 수 있다. 민첩성은 속도가 주는 유쾌함의 더욱 순수한 형태이다.(139쪽) 이 책에서 루카스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 문장이 여러 곳에 있지만 다음 글은 문체를 고민하는 초심자에게 들려주고 싶다. 

 

속도감은 그 자체로 자극이 될 뿐만 아니라 읽거나 듣는 사람이 소극적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기보다는 협조하도록, 일어나 달리도록 한다. 독자는 책 내용을 빨리 이해하도록 도전을 받고, 그 도전이 감당할 만하다면 그걸 즐기게 된다.(141쪽)


그렇다고 해서 활시위를 당긴 채로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은 금물이다. 만약 문체가 너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면, 독자가 너무 긴장을 해서 한시도 정신을 이완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는 이때 독자는 '꿈꾸지 못할 수 있다'(144쪽)고 우려한다. 이 말은 속도감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때에 긴장을 풀어주라는 말인데, 곧 절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강조하는 핵심 덕목으로 절제와 균형을 꼽는다. 더 나아가 루카스는 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세련성과 소박함을 강조했다.


많은 작가의 경우 형용어구는 양적으로 과도하고 질적으로 부족하다.(150쪽) ...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청자나 독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있고 강압적으로 호통 치는 사람이 있다. 작가는 연설가보다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유혹에 덜 빠진다. ... 현인 행세를 하며 강압적으로 가르치려 들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하면 돌팔이나 바보 또는 둘 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2쪽)  


루카스에 따르면 낙천적 기질은 사실 세련성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는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은 크게 세 가지 의도가 있는 듯 보인다면서 첫째는 괴로움을 주려는 의도, 둘째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본능에 따른 것, 세 번째 의도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그러한 심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으로 이를 조절해야 한다고 보았다.(177-185쪽)


잔뜩 긴장이 들어가 있는 글은 읽는 독자 역시 긴장감을 가진다. 글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독자의 몰입을 도울 수 있지만 적절하게 이완하지 않을 경우 독자를 고통에 빠뜨린다. 쓰레기통에 배출해야 할 분노를 독자의 눈 앞에 펼쳐 놓는 행위와 같다. 

긴장을 늦추거나 균형 감각을 되찾으려고 할 때 유쾌함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 긴장을 이완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실생활에서나 서신에서나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지루함과 피로를 안겨주기 마련이다.(185쪽)


세련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박함을 버리지 않는 글쓰기는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글감에 대한 분별력과 독자에 대한 진실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루카스는 글을 잘 쓰려면 허위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단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진실성 있는 태도를 갖고 임하여 한 순간이라도 얼버무리거나 말끝을 흐리지 말아야(202쪽) 한다는 루카스의 말은 결국 절제와 균형이 그저 인내하고, 기계적 수평을 유지하려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지 말라는 주문은 엄중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앞서 말한 문체의 기초, 명료성과 독자에 대한 예의를 두루 갖추었을 때 나오는 능력이다. 자신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않고, 독자를 지루함에 빠지지 않도록 유쾌함을 유지하면서도 어느 한순간 진실함을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행복감에 휩싸여 손쉽게 글을 쓰거나 열정에 도취되어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한 거리를 두고서 결과물을 바라봐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376쪽)


글 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 능력은 자기를 얼마나 객관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를 객관화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은, 친한 사람에게 '내 글 어때요?'라고 논평을 요구하는 것인데 , 이 경우에도 인정욕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진정한 객관화에 도달하지 못한다. 글을 쓸 때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열정을 지속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글쓰기 방법에서 핵심은 정신의 더욱 의식적인 부분과 덜 의식적인 부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글이 냉담할 정도로 정확해지거나 극도로 괴벽스러워질 수 있다. (388쪽)



< F. L. Lucas의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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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F._L._Lu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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