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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pr 03. 2020

비극의 중계 앞에 선 인간

타인의 불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촉수를 느끼기

월드오미터(https://www.worldometers.info)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실시간 통계를 제공하는 참조 웹 사이트이다. 요즘 여기서 제공하는 정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국가별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 현황이다.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로 들어가면 바로 볼 수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의 뉴스도 이곳을 참조하여 보도하고 있다. 


국가별로 전체 확진자, 새로운 확진자, 총 사망자, 새로운 사망자, 회복자, 현재 환자, 위중한 자, 인구 백만명당 확진자와 사망자 순으로 보여준다. 내가 처음 이 페이지에 들어갔을 땐 맨 위에 중국이 있고, 그다음에 한국이 있었다. 그 아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올라오더니 한국을 추월하고 중국까지 추월했다. 지금은 미국이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한 계단씩 내려가서 2020년 4월 3일 현재 열다섯 번째 줄에 있다. 매일 이 통계를 보면서 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언제 맨 위로 올라가지? 한국은 이렇게 내려가다 보면 결국 어디쯤 위치하게 될까. 일본은 아직 아래쪽에 있지만 곧 위로 올라오겠지? 이런 궁금증에 자문자답하면서 내 생각은 '비극의 중계'에 머물렀다. 동시에 그 옛날 걸프 전을 TV로 거의 실시간으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CNN은 미국이 어디를 점령했고, 적과 아군이 몇 명이 사망했고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했었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안방에서 보는 게임으로 변모하는 순간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정리된 데이터를 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다. 국가 간 연계와 상호의존성이 크지 않았던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내가 오늘 아침 '습관적으로' 이 페이지를 보다가 갑자기 심각해진 까닭은 바로 비극의 중계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국 상황과 유럽, 미국의 상황, 일본의 그것을 습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계속 내려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이 상황을 세계 상황에서 봐야 하는 것인지, 이기적으로 내가 속한 곳의 상황만 볼 것인지... 내 비극은 비극이고 이웃 나라의 비극은 그저 데이터로 표기된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  


통계는 '확진자 수'에 서열을 매기고 있다. 나머지 통계들은 확진자 수에 종속하여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누구에게는 이 순위를 지켜보는 것이 올림픽 메달 순서만큼이나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분명 비극 앞에서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때로 수치화된 정보는 우리 위치를 객관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여러 사연과 맥락들을 사상하여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인간은 자극에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비극에 대한 민감성이 결국 이것에 대응할 힘을 기르게 할 것이다. 아울러 내 비극과 이웃의 비극은 결코 데이터로만 비교할 수 없는 꼭 같은 비극이자 불행이다. 코로나 사태가 세계 질서를 개편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 사태를 계기로 경제적 편익을 재빨리 계산할 수도 있고, 외교적 득실을 따질 수 있겠지만, 비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무엇도 아닌 살아있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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