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Dec 30. 2022

쓰고 싶은 글 vs 많이 읽히는 글   

기약 없이 참고 견디는 습관이 글쓰기 능력을 키운다

글쓰기는 본래 기약 없이 참고 견디는 습관 속에서 성장한다. 지난 글에서 브런치는 소란스럽지 않은 글쓰기 플랫폼이라고 했다. 광고가 따라붙지 않는 대신 글쓰기에 대한 어떤 대가도 없다. 그저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을 선사할 뿐이다. 조용함이 싫다면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데, '친구'라는 독특한 네트워크로 이뤄진 페이스북은 글쓰기 외에 '관계'를 두고 신경 쓸 일들이 많다. 이런 시스템의 상이함은 온라인 플랫폼의 속성, 사용자들의 선호 문제를 반영하면서 진화해 왔다.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들은 글쓰기 자체에 집중하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글을 쓰는 이상 누가 내 글을 읽었는지, '라이킷'을 눌렀는지, 구독이나 댓글을 달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에 비하면 브런치 작가들이 글쓰기 자체에 몰입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가들 간의 메신저나 친구 맺기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브런치의 성격이 작가들 간의 '교류'가 아닌 글쓰기 자체에 있음을 방증한다. '구독'은 '친구맺기'와는 다른 작가와 독자의 건조한 연결을 도모할 뿐이다. 그러니 브런치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의 정체성을 갖는다. 그냥 독자이거나, 작가이면서 동시에 독자이거나.

이는 상당히 중요한 특징인데, 작가들 간의 교류나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다면 (이미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있으므로)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브런치가 조용한 글쓰기 플랫폼을 제공하여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콘셉트는 매우 참신한 시도이다. 정글과도 같은 한국의 온라인 생태계를 경험한 입장에서는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 기대하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경영자는 그 사업을 접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예비작가들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하나가 브런치 편집진은 어떤 글을 좋아하는 가이다. 브런치 홈이나 다음카카오 화면에 글이 한 번 노출되면 조회수가 급증한다. 브런치 편집진은 어떤 기준으로 글을 선정하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편집진에 의하여 노출이 되는 글은 문학적으로 훌륭하거나, 고매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거나, 작가가 들인 시간이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를 처음 사용할 때 궁금하기도 해서 몇 편의 '웃기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이게 카카오 초기화면에 올라가니 단번에 조회수가 1만을 넘겼다. 비교적 일찍 어떤 글이 선택을 받는지 알았던 편인데, 물론 아시는 대로 나는 다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쪽이다.  

단언할 수 없으나 대략 일별해 본 느낌으로 말하면, 소소한 일상에서 감동을 주는 글, 가볍지만 의미가 담긴 글, 작가의 사생활을 적당히 드러낸 글,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 흔하지 않은 경험(해외 생활, 특정 직업에 대한 이야기)을 쓴 글 등이었다. 아마도 브런치 시스템의 분석 결과 조회 수를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글, 혹은 이미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글일 가능성이 많다.

전반적으로 브런치 글을 읽는 독자가 많다는 것은 편집진에게 좋은 일이고, 이 영역이 계속 살아남을 근거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편집진은 당연히 '클릭 총량'을 높이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작가들에게 공짜 플랫폼을 제공하는 이상 이런 재량권을 편집진이 가지고 있는 것에는 하등 딴죽을 걸 이유가 없다. 다만, 작가들도 깊이 고민할 부분이 있다. 브런치 생태계에 대한 개략적 이해를 바탕으로 했을 때 나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인가, 많이 읽히는 글을 쓸 것인가. 작가로 불린 이후 이 딜레마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많이 읽히는 글 사이에 작가의 고뇌가 놓인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가와 깊이 관계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는데 많이 읽어준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문장력만 가지고 있다면 제목은 '늘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으로, 내용은 브런치 독자 수준을 감안하여 소소한 감동을 주는 쪽으로, 사실은 얼마든지 인위적 노력을 가미할 수 있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다.

가끔 스스로 질문하자. 정말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건가.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어떤 목적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내가 애초 꿈꾸었던 방향에 부합하는가. 그냥 브런치 독자들의 취향에 의존하여 그들이 즐겨 읽는 글을 쓰고 있진 않은가. 심지어 어떤 글쓰기 코치를 자처하는 작가는 노골적으로 '끌리는 제목'을 쓰라고 권한다. 제목 보고 클릭했다가 초반부 내용까지 읽고 멈춘 기억이  꽤 될 것이다. '끌리는 제목'에만 신경을 쓰면 인터넷에 넘치는 쓰레기 같은 '선정적 제목의 기사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끌리는 제목이든 선정적인 제목이든, 클릭 유도성 제목을 쓰는 것은 작가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제목은 내용을 함축해야 한다. 글쓰기의 소재과 묘사 방식, 즉 내용이 좋으면 제목을 달기는 그만큼 쉽다. 글쓰기 욕구가 강한 당신은 많이 읽히는 글이 부러울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해둘 것이 있다. 많이 읽히는 글은 좋은 글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반드시 좋은 글은 아니다.

글쓰기를 통하여 타인의 인정을 받거나, 남을 설득하거나, 잊지 않게 기록하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한다. 아울러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효과가 있다. 글을 쓰기 전에,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많이 읽혀야 하고, 좋아요도 많아야 하는 욕망을 추가하면 치유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때부턴 자꾸 독자들의 눈치를 보게 되니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참고, 인정 욕구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것이지?"라고 반복하여 질문해야 한다.


독자를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글도 남이 읽어주지 않는다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글 속에 순식간에 묻힌다는 사실 때문에 '지속적으로' 독자의 관심을 묶어두려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독자를 묶어두기는 커녕 작가 본인이 온라인 플랫폼에 묶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는 풍부한 상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실을 말하자면 '관심을 묶어 두는 일'은 글쓰기 영역 밖의 일이다. 물론 완전히 도외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 타인의 관심에 묶이게 되면 그때부턴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플랫폼이 원하는 글, 독자들이 원하는 글을 '생산'하게 된다. 결코 당신이 원했던 작가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양식 있는 브런치 독자들은 선정적 제목에 이끌려 클릭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읽을 거린 많고 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작가 편에서는 독자를 끄는 것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독자의 지적 교양을 믿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된다. 사실 독자를 존중하라는 것은 내용에서나 제목에서나 정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작가로 성장하고 싶은 당신이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은 작가로서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일, 글쓰기 동기와 목적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비록 소수가 읽는 글이라 하더라도 내가 세상을 향하여 하고 싶은 말을 정직하게 하고 있다면 당신은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내 글이 많이 읽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글쓰기의 근육이 생기기 전에 기교만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커진다. 독자는 어디에 머무는가. 좋은 소재와 풍부한 묘사, 그리고 독자에 대한 정중함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 모른다. 글쓰기는 본래 기약 없이 참고 견디는 습관 속에서 성장한다. 성실하게 많이 읽고 많이 쓰라. 명의 가벼운 독자냐, 명의 진중한 독자냐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작가의 몫이다.     




  


커버 이미지 https://gaa.org/technical-writing-a-judges-perspective/


이전 18화 집필 후유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