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일
작가, 독자, 해석자의 입장을 빈번하게 왕래하는 일
지난 글에서 작가의 일이란 작가, 독자, 해석자의 입장을 빈번하게 왕래하는 것이라 했다. 쉽게 풀어 말하면 많이 쓰고, 많이 읽고, 음미하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다. 읽고 쓰고 음미하는 일을 각각의 개별 사태로 흩어지지 않게 부단히 연결하는 일, 그것이 작가의 일이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차 입문 과정을 통과했으니 통상 '작가'라는 명칭을 붙여준다.
책을 낸 사람을 따로 구분하여 '출간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예비작가와 기성작가 정도의 구분인데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출간작가 딱지가 붙은 사람을 부러워할 일도 아니고, 아직 책 한 권 못 냈다고 움츠릴 일도 아니다. 예비작가와 기성작가는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글쓰기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늘 던져야 할 질문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 글을 써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글을 썼더니 무엇이 달라졌는지 등등.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실천과 붙어서 자기 자신에게 소명이 된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와 상관없이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를 대략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글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다. 인정 욕구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 욕구이다. 이것 때문에 문명이 발생했고, 사랑이 있었으며, 무리의 우두머리가 탄생하고, 싸움과 질투가 있다. 인정 욕구는 인간의 오욕칠정을 드러내 주는 핵심적 원천이다. 좋은 글을 써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욕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예비작가와 기성작가를 막론하고 이것이 없다면 글쓰기 열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음껏 욕구하라.
둘째,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싶을 때, 남을 설득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글에 주장을 담고 싶다면,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장을 담는 글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동원하는 데이터는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주장의 목적은 내 글을 읽은 독자가 내 의견에 동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사여구로 아름답게 포장하겠다는 욕구는 버려라. 글로 싸울 준비가 되었다면 전장으로 나가라. 다만,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하라. 겸손이 없는 주장은 위험하다.
셋째, 인간에게는 '기록'의 욕구가 있다. 무엇인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중요한 삶의 흔적이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인간의 기록 욕구를 증폭시킨다. 죽음의 문턱을 헤쳐 나온 사람은 그 기억이 잊힐까 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을 것이다. 이별의 쓴맛을 본 사람도 어떻게든 그때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또 특별한 경험을 했을 경우에도 이를 남겨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기록을 위한 인간의 욕구가 역사를 만든다.
넷째, 삶의 아름다움을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가진 미학적 열정의 발현이다. 미학적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기의 흐름과 딛고 있는 대지의 질감을 느낀다. 사물을 보는 시선이 특별하다. 풀 한 포기에서도 생명의 경이를 볼 수 있고, 아주 작은 미물로부터도 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삶의 경이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시와 산문을 낳는다.
대략 몇 가지 유형으로 글쓰기 욕구를 비교해 보았다. 사실 이는 조지 오웰이 말한 글쓰기의 동기, 즉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과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제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 들 때, 재차 자신에게 질문하라. 어휘, 문장, 묘사, 스타일 등 글쓰기를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많지만 그에 앞서 내가 왜 글을 쓰기로 했는지에 대한 부지런한 질문과 답변이 있어야,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정할 수 있다. '어떤 글'이라 함은 당신이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작가가 되려고 하는지를 반영한다.
브런치 글쓰기를 할 때 빠지는 함정이 있다. 구독자가 많다고, like를 많이 받았다고, 댓글이 많다고 좋은 글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글의 공통점은 '관심을 끌었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좋은 글은 아니다. 그러니까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어느 정도는 이런 문제로부터 초월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것인가, 당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인가는 누구도 아닌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웹소설 작가 중에 일 년에 십억 이상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웹소설은 많이 읽히는 글일 뿐, 좋은 글과는 거리가 멀다. 관심에 목이 마른가. 어느 정도는 건강한 인정 욕구로 봐줄 만 하지만 극단으로 흐르지 말라. 선을 넘는 관종은 대개 폭주하다가 흑화한다. 인정 욕구가 충만한 사람과 관종은 역시 종이 한 장 차이다. 이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글쓰기는 창작이 아닌, 욕망만 남은 정신 소모로 전락한다.
브런치에서 잘 읽히는 글이 있다. 일상을 소박하게 묘사하거나, 반려동물의 행동을 잘 관찰하여 글을 쓰거나, 감성이 풍부하거나, 자기 고백적이거나... 관심받고 싶다면 이런 글을 쓰라. 그러면 브런치 편집진이 브런치 홈에도 올려주고, 다음카카오에서도 링크를 걸어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온라인 글쓰기가 갖는 강점이자 숨길 수 없는 한계다. 정말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링크와 클릭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울러 신변잡기를 논하는 글쓰기를 넘어서야 당신이 추구하는 글쓰기 경계를 확장한다. 다시 질문하라.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작가의 일은 이 질문을 평생 반복하는 것이다.
예비작가를 위한 글쓰기 안내서
커버이미지 https://www.conted.ox.ac.uk/courses/advanced-creative-writing-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