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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25. 2020

좋은 글은 절제와 균형의 산물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것은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대표적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에 글을 쓴 지 꼭 10년이 됐다. 최근 그곳에 글을 쓰지 않고 있다. 아마 한 달쯤 된 것 같다. 언젠가부터 타임라인이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론의 장을 기대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 그곳은 일방적으로 주장을 던지고 그것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똬리를 틀고 서식하는 곳처럼 여겨진다. 관심을 끌고 싶은 사람들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극과 공격을 일상화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진중하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계속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10년 전 페이스북에 글을 즐겨 썼던 이유는 트위터 같은 단문 글쓰기 방식이 주는 정신없음과 속도감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동안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였고, 친구들과의 교류는 분명 내 성장에도 좋은 에너지가 됐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보니 시들해진 것일까. 내가 그것을 대하는 관심과 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지금은 여기 브런치에 가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올린다. 페이스북처럼 즉시, 많은 피드백이 올라오지 않는다. 또 올린 글이 금방 퍼져서 소문이 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브런치는 매우 조용한 곳이다. (물론 여기서도 두터운 독차층을 형성하고 좋은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 편에서는 조용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페이스북의 난무하는 글들을 보면서 '폭주'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빠른 반응은 글쓰기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을 늘 긴장 상태로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SNS에 몰입하는 시간으로 할애한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싸우고 분노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상을 사는 우리가 글을 쓰면서 어떤 내용을 가능한 빠르게, 넓게 알려야 할 때가 있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주장하는 그 무엇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닿아 생각을 움직이고, 내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글 쓰는 자가 갖는 욕구의 핵심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글쓰기 강좌를 통해서 '읽히는 글'을 쓰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써놓고 혼자 보는 글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모름지기 글은 공표를 목적으로 쓸 때 생각을 다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도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내 심리 상태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과도한 글에, 무수한 말에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할 여유를 갖고자 하였으나 하루에도 몇 번씩 SNS에 드나드는 한, 그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 브런치는 내게 있어 '글 창고' 같은 곳이다. 몇 가지 영역(매거진)을 정하여 글을 쓰고 분류하고 저장한다.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 공표를 할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다. 처음부터 큰 반응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쓸 수 있고, 언제든 수정해가면서 다듬을 수 있으니 그것이 좋다.

글쓰기의 여러 효과가 있다. 1) 사실의 기록, 2) 타자로 하여금 나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 3) 주장의 전파, 4) 치유적 효과 등이 그것이다. 글쓰기 한 번에 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까. 그것은 욕심이다. 특히 2), 3)은 연계돼 있는데 글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고 내가 가진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전파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자주 무리를 한다. 원하는 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면 자극성 높은 글을 쓰게 되고, 그래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때 자기 파국의 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이런 경로를 <관종-폭주-흑화>의 길이라 말했던 적이 있다.

좋은 글은 절제와 균형의 산물이다. 덜 말하고, 덜 주장했음에도 공감은 크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말이 어떻게 나 중심으로만 돌아갈까. 글로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타자의 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깊은 공감도 표해야 한다. 글쓰기는 상호작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말하고 주장하면,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그 격한 반응은 때로 독이되어 나를 겨눈다.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것은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상이 진부하다고 느끼는가. 큰 격동이 없이도 차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형성해 온 내적 역량 때문이다.



* 커버 이미지 https://edmontongazette.com/online-writing-jobs-stay-home-m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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