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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pr 14. 2024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나른한 주말에

... 무료하고 무료한데 딱히 뭘 하고 싶지는 않다

목련으로 말하자면 꽃보다 이파리가 좋다. 주먹만 한 꽃을 미친 듯이 피웠다가 일시에 후드득 떨어지면 뭔가 당황스럽다. 집 앞 목련나무의 이파리는 둥글둥글하니 순하여 꼭 나를 닮았다(?). 주로 화단의 경계로 쓰이는 회양목도 흔한 영산홍도 봄이 완연하여 제 빛을 낸다. 감나무와 대추나무, 단풍나무도 이파리를 내밀고 계절에 맞추어 제 할 일을 한다.


목련, 꽃보다 이파리


휴직 후 한 달 남짓 열심히 걸었고, 몇 군데 지방 나들이를 다녀왔으며 어젯밤에는 공연을 보았다. 성악가와 뮤지컬 가수는 무대에서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했다. 저 사람은 노래가 아니었으면 넘치는 끼를 어떻게 감당했을까란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난 도무지 무엇에 열정을 쏟고 살았나 생각하니 허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배우자께선 외출을 하셨으므로 딸과 함께 공모하여 국수와 돈가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배가 부른 딸은 약속이 있다면서 휑하니 나갔다. 넓은 서식처의 현관 쪽은 적막감이 만연하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할 일 없는 나른한 주말에 넷플릭스에 들어가니 도무지 많고 많은 영상 중에 당기는 것이 없다. 건조기에서 수건을 꺼내 (나름대로는) 차곡차곡 개어 보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배우자께서는 뭐라 뭐라 하면서 다시 갤 것이다. 배우자는 수건을 잽싸게 둥글게 말아 고정시키는 데 난 그게 잘 안 된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이 다른 것이라고 빠르게 합리화했다.


개어 놓은 수건과 햇볕 좋은 창밖


수건을 다 개어 놓고 창밖을 보니 햇볕 작렬이다. 이런 날은 광합성을 좀 해줘야 한다. 그러나 어제 공연 관람하면서 진심 몰입했더니 늙은 몸이 피곤하다. 뮤지컬 가수와 악수하는 행운도 있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억 속에 아련하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쿠키와 함께 홀짝거렸다. 무료하고 무료한데 딱히 뭘 하고 싶지는 않다. 


잘 가꾼 내 집 앞


애꿎은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다가 고른 것이 'The Lesson'이란 영화다. 젊은 작가 리엄이 자신이 동경하는 유명 작가 싱클레어의 아들 버티의 가정교사 제안을 받는다. 싱클레어 가족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던 리엄은 가정에 숨겨진 비밀과 어두운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다 보고 나서 아무 말도 없으면 재미가 없었다는 뜻이다.


The Le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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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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