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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10. 2024

허송세월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김훈, 허송세월, 43쪽) 


김훈의 신작 에세이 '허송세월'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작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소박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이를 삶의 의미로 연결한다. 동시에 이 책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순간들의 가치를 전하고 싶은 바람을 드러낸다.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낸다는 뜻의 허송세월이라는 산문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허송세월(김훈, 2024)


작가는 전작 '라면을 끓이며'에서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라고 말했다. 지리멸렬하게 반복하는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삶의 엄중함이 담겨있다는 말이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허무감이 배어 나오는 문장으로 기억한다. 이 짧은 문장은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면서 동시에 일상을 허투루 살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대개 소시민적 삶의 방식이 그러하듯, 작은 것을 탐하고 사소한 것에 감동하며, 때로 답답한 세상을 향해 핏대를 세우거나, 혹은 멋쩍게 화해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저 하루를 보내고, 고단한 몸에 휴식을 주며 내일을 기다리는 거기서 거기인 삶의 연속이었다. 더 대단하지 않아서 무력감에 빠지고, 때론 더는 나쁘지 않아서 안도하는 별 볼일 없는 일상이었다. 대개의 중년 남성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 짧은 문장을 대했을 때 묵직한 충격이었다.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는 이 책의 부제로 더도 덜도 아닌 맞춤형이었다.


라면을 끓이며(김훈, 2015)


작가 김훈이 구사하는 문장의 특징 중 하나는 무심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듯하다가도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묘사의 디테일이 정점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전개 방식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글 전체를 포괄적으로 읽기보다 특별히 잘 쓰인 문장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 생각에 어떤 문장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다. 다른 문장들은 사물이나 생각을 지나치리만큼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데 할애한다. '라면을 끓이며'나 '연필로 쓰기', 그리고 신작 '허송세월' 모두 작가 특유의 산다는 것의 겉면과 이면을 두루 다루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상 속 사물이나 경험에서 포착한 김훈의 언어들은 '사는 문제'와 진중하게 결합돼 있다. 허송세월에 이르러 조금 더 철학적이며 내면적인 성찰이 있긴 하지만 작가는 허무와 무심, 그리고 의미를 잘 연결하는 문장가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은 제목이 말해주듯 허송세월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다. 진부하게 순환하는 삶과 그것의 덧없음, 그리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작가는 능숙하게 연결한다. 이전의 산문집에서도 그러했듯, 독자들의 관심사를 비켜가는 곳도 몇 곳 있다. 물론 이는 작가가 가진 일종의 보수성이거나 남성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관습적 글쓰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에 의미를 담아 간결하게 함축하는 글쓰기 스타일이 좋아서 김훈의 산문을 읽는다.


그의 관습적 글쓰기에 대한 일말의 저항감에도 불구하고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가령 '연필로 쓰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호기롭게 선언하였다. 


-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연필로 쓰기, 2019)


뉘라서, 독자들을 향해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의 전모를 파악한 연후에, 느긋이 관조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감히 하지 못할 말이다. 이 선언이야 말로, 내 글에 대한 자존심을 결연하게 다짐하는 글이요, 독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월적 사고를 드러내는 말이 아니던가. 내가 나이 70이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사실 속으로만 다짐할 뿐,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언젠가 썼던 "내 글이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독자들이 아무리 성원을 해도 나는 불만이다" 따위의 글 말이다. 선언과 실천을 만나게 하는 일은 어렵고도 먼 길이다.

연필로 쓰기(김훈, 2019)


신작 허송세월에서 느끼는 허무와 쓸쓸함을 달래줄 글쓰기 근성을 5년이나 지나간 전작 산문에서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덧없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막아낼 도리가 없는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작가만의 방식이려니 하고 이해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기에 작가도 서문의 제목을 '늙기의 즐거움'이라 정하지 않았겠는가. 우린 휴대폰에 지인의 부고가 계좌번호와 함께 찍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부고를 받은 작가는 말한다. 


-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은 희미한데, 죽은 뒤의 시간의 낯섦은 경험되지 않았어도 뚜렷하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좋을 터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부고는 그다지 두렵지 않다.(허송세월, 늙기의 즐거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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