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썼던 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유독 불면에 대한 기억과 새벽에 깨어 무엇인가를 했던 문장이 많다. 나쁜 꿈을 꾼 이야기도 많다.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평생 달고 살았다. 쫓기다 보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솟고 그렇게 날아서 도망가다가 그물에 걸리는 꿈 말이다.
1980년 5월에 잠시 도피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별것 아닌 일로 피해 다녔지만 그때의 공포감은 오래 내 몸에 남았다. 81년 말에 대학의 방송연보 편집장을 맡아 짧은 단편을 하나 실었다. 서슬이 파랬던 전두환 정권 2년 차였다. 방송제를 한 번 하려면 전체 원고 초안을 계엄사에 들고 가 검열을 받던 시기였다. '그날 새벽'이라는 제목을 달아 도망 다닐 때의 감정을 담았는데 검열을 피하고자 '각색'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삼켰고, 풋사랑 이야기를 섞었다. 비겁한 일이었다. 40년 동안 질기게 붙어 있었던 기억이 최근 비상계엄 시국을 맞아 되살아났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집회에 참여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볼지 모른다. 몸에 각인된 공포감 때문이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아나운서의 긴장 가득한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엊그제 들었던 '포고령'은 조악한 문장으로 희화화의 대상이 됐지만 원래 포고령이란 듣는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는 무게감을 갖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도 헌법과 법률을 현저하게 위반했을 터였다. 그러나 먼저 무력으로 언론을 차단하고, 중요 인물의 인신을 구속한 후라 포고령은 가공할 힘을 발휘했다.
기록을 위해 적었던 짧은 이야기 '그날 새벽'을 공유한다. 비록 비겁한 각색으로 사랑 타령이 섞였지만 계엄 정국에서 도피자가 느낀 공포감은 생생할 것이다. 그 기분을 함께 느껴준다면 긴 시간 나를 압도하던 악몽도 물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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