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과 선택, 취향
내일 CGV에서 상영하는 <미녀와 야수>를 예매했다. 이 결정에 이르기까지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다. 오늘의 그 글은 그 요인들(그리고 요인이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의 모음이다. 왓챠가 지나간 영화에 대한 선택을 도왔다면, 이것은 현재 상영중인 최신작의 관람에 대한 얘기다.
먼저 나의 영화 관람 습관을 밝히자면,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관에 자주 가진 않는다. 누구와 함께 가든 혼자 가든,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시간이다. 한 달에 한 편, 많아야 두 편. 정말 보고싶은 영화가 생겨야 하거나 그게 아닌데 영화관에 갈 일이 생기면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이번에 개봉한 <미녀와 야수>에 조금의 관심은 있었다. 기대라기보단 궁금증이 컸다. 2017년 지금 디즈니가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공주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까지 가서 볼 거라곤 생각 못했다. 잘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었고 소재와 내용을 빤히 아는데 굳이 만 원 상당을 지불하면서까지 볼 가치가 있겠는가 싶었다.
그럼에도 오늘 <미녀와 야수>를 예매했다.
이것의 결정 과정은,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도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우선, 심심해서 우연히 들어가본 CGV 앱이었다. <미녀와 야수>가 개봉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앱에 들어가자마자 그 포스터가 가장 먼저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 예매율 1위인 거다. 처음엔 단지 디즈니라는 이름, 엠마 왓슨의 스타성, 그간의 광고의 힘 등등의 결과려니 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건 추천율이었다. 지금은 조금 내려갔지만 개봉 당시에는 97-98%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관람평에도 긍정적인 얘기들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서 일단 마음이 기울었다. 잘 만든 옛 고전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라니, 호기심이 선호로 살짝 기울었다.
결정타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였다.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우연히 <미녀와 야수> 얘기가 나왔다. 4명 있는 방이었는데 그 중의 두 사람이 벌써 봤더랬다. 일차적으로 '많이들 보는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심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엠마 왓슨의 존재감이나 연기, 스토리적 부분에 대해 지적(칭찬도 아닌)하는 짧은 대화를 접했다. 그리고나니 더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도' 봐야겠다는 생각은 지인들에 의해 한층 굳어졌다. "오, 나도 한 번 봐야겠다" 빠르게 진행되는 카톡 대화 속에서 그 말이 쉽게 나왔다.
결정적인 요인들은 이 두 가지였다. 별 것 아닌 과정인데 새삼 글로 쓰면서까지 복기하고 있는 것은 내 결정에 영향을 준 요인들의 정체들이 그 이전과 달라서다. 특히 'CGV'는 최근 영화의 동향을 살피고 볼 만한 영화가 있나 찾기 위해 수시로 들어가보는 앱이다. 그 곳에는 내 영화 관람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예매율 1,2,3위에 대한 집착이다. 상영 중인 영화들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긴 해도 결국 관람을 결정하는 영화들은 3위 안에 머문다. CGV의 인터페이스는 앱의 접속과 동시에 현재 1위 영화를 화면 가득 채운 후 화면을 넘기면서 순차적으로 다음 순위의 영화들을 살펴보게 하는데, 그 결과 상위권 영화들은 접근성조차 달라진다. 영화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이 앱 안에서 더욱 극명해지는 셈이다. 영화관에 가서 상영 중인 영화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고를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또 하나는 예매평과 점수다. 내가 신뢰하는 그 점수들은 일반 관객들이 매긴 것이다. 마치 그 영화의 '진짜' 성적표처럼 굳건하게 낙인이 찍힌다. 그러고보면 CGV 앱은 전문 평론가들의 평이나 점수는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있었는데 내가 찾지 못했나? 눈에 띄지 않음은 분명하다. 평론가보다 일반 대중의 평가를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고 자연스레 그것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취향과 내 취향이 평론가의 그것보다는 더 잘 맞다는 방증이다. 흔히 말하는 오피니언 리더의 영향력은 이제 영화 추천 시스템에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 내 취향과 결정은 그저 대중과 지인들 몇 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문득 궁금해져 왓챠를 들어가보니 <미녀와 야수>에 대한 내 예상평점은 3.6점이란다. 이 정도 점수의 영화는 집에서도 보는 일이 드물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흥미롭다. 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는 데 나름대로 재고 따지는 노력들이, 어떤 전문적인 견해나 체계적인(또는 이성적인) 절차가 아니라 개인적, 직관적, 때때로 감정적 요인들로 대부분 구성되고 있다. CGV의 화면 인터페이스가 지금과 달랐다면, 일반 관객의 평점 대신 이동진의 한줄평을 메인에 내세웠다면, 그리고 단톡방이 존재하지 않아 지인들과 우연히 이 영화에 대해 나눌 기회가 없었다면 과연 나는 <미녀와 야수>를 예매했을까. 했더라도 그것에 임하는 자세와 경험의 결들은 달랐을 것이다.
영화뿐 아니라 나의 모든 선택들은 얼마나 임의적이고 복잡다단한 맥락들을 거쳐왔을까.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경로와 방식이 다양한 요즘 같은 이런 시대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