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Dec 11. 2019

지겹게 일등석을 타면서 깨달은 것

"집도 차도 없어도 좋아, 나랑 결혼할래?"

행복은 뭘까. 변치 않고 언제나 그대로인 행복이 존재할까. 가변적인 껍데기가 아닌 본질 그 자체인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인생을 좀 더 평화롭고 현명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내 인생의 화두는 '작더라도 확실한 행복의 원천을 찾는 것'이다.

in 이스탄불



"돈 많으면 행복할 것 같아"


내가 다니던 대학엔 잘 사는 집 애들이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여유롭게 대학생활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땐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연차가 좀 쌓이면서 나는 스무살의 내가 원하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나름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대출이 좀 끼어있긴 하지만 역세권에 전세 오피스텔도 마련했고 옷도 사고싶은대로 샀고 명품백도 두세개 있고 여행도 내키는대로 다녔다. 하지만 처음에 카드를 긁을 때의 짜릿한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정비례 할거라고 생각했던 행복감은 이내 무뎌졌다.



"맨날 일등석 타면 얼마나 좋을까"


일을 하면서 행복에 대한 고뇌는 더욱 깊어졌다. 나는 온갖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좋은 호텔에 다니며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한다. 그리고 물어본다. 그렇게 좋은데 많이 다니면 진짜 행복하겠다고.


수없이 '아니오'라고 대답하다(좋아하는게 밥벌이가 되면...이하생략) 지쳐 아무 대답도 안하기 시작하며 깨달았다. 어린 내가 꿈꿨던 상상 속의 행복과 이들이 내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는 행복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선망이구나. 선망은 실체가 없어서 '행복하겠다'는 추측일 뿐 본질은 아니구나.


그래서 난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화려한 곳들에서 찍은 인생샷도 아니고 쏠쏠히 쌓이는 마일리지도 아니고(유튜브로 돈 많이 버냐는데 저는 그냥 월급 받아요)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좋아보이는 것들이 행복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된 것. 그리고 '진짜 행복은 마음 속에 있구나'를 알게 된 것.


1박에 230만원짜리 몰디브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때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강릉 경포대 앞 10만원짜리 방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훨씬 행복했다. 눕고 뒹굴어도 자리가 남는 수천만원짜리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목적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보다 엄마와 저가항공 타고 방콕 여행 갈 때가 훨씬 행복했다. 코스가 끝도 없이 나오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드넓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먹방을 찍을 때보다 손녀 먹이겠다고 아침부터 할머니가 볶아주신 멸치볶음에 쌀밥 한숟가락이 훨씬 맛있었다.



"집도 차도 없어도 좋아, 나랑 결혼할래?"


결혼에 있어서 1순위는 안정이라고 믿었던 내가 아직은 사회초년생인 지금의 연인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중요한게 뭔지 알았으니까. 껍데기가 뭐고 본질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됐으니까. 이 사람과 평생 이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배려하고 사랑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큰 아파트 좋은 차 명품 옷들 화려한 일상은 다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반대로 그 모든 것이 있더라도 이 사람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빈 껍데기로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치의 흔들림과 약간의 빈틈도 없이 열심히 사랑한다. 이 사람을.


너무 다행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어서. 이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내가 이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의 연인이 나와 똑같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우리가 이토록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어서.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이 사람은 오늘도 나의 작은 뒤척임에도 금방 깨서 날 토닥이고 온 얼굴에 입을 맞춰주겠지.


그걸로 됐다. 난 너무 행복하다.


그가 찍어준 나의 모습. 편안해 보이는 나의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니를 뽑고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