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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May 03. 2020

엄마의 집이 있다는 것

어버이날의 소회

독립한 지 일 년 하고 두 달이 지났다. 혼자인 삶은 자유롭고 안락하며 정돈되어 있다. 그 어떤 침입자도 방해자도 없이 내 시공간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곳. 독립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집이 그리워' 뭐 이런 진부한 클리셰는 아니다. 나는 엄마가 사는 집이 별로 그립지 않다.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라서 아파트를 큰 평수로 넓혀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 왔던 그 집은 나와 동생의 몸집이 커져가자 이내 포화 상태가 됐다. 엄마는 정리정돈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하루 10시간의 바깥일을 하면서 집안을 깔끔하게 돌보기란 불가능했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에 마음이 잠식당하는 것 같은 날이 늘어나자 나는 대출을 받아 집을 나왔다.


실평수로 보자면 엄마 집의 내 방과 다를 바가 없는 6평짜리 원룸 오피스텔로 분리된 나는 엄마와 얼마간의 '안정 기간'을 거쳤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안정 기간'을 거쳤다. 일찍이 아빠와 졸혼하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20대 중반 아들을 양육(아직 밥값을 못하는 나의 대학생 호적메이트여)하고 있는 엄마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지만 외로운 사람이다. 호탕하거나 사회적인 성격은 아니라 친구도 많지 않고 패키지여행 같은 건 질색하는 얌전하고 예쁜 아줌마. 그런 엄마에게 나의 존재는 친구이자 애인이자 그 이상이었으니, 딸의 일방적인 독립 통보가 엄마에겐 꽤나 상처였음이 분명하다. 결정하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나의 성정 덕분에 12월에 '내년엔 독립할 것'을 천명하고 1월에 '집을 계약했다'고 선언했으니, 엄마의 그 벙찐 표정 잊지 못한다. 딸이 사라질 것이 확정되고 엄마는 새로운 자녀를 들였다. 막내아들 모리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그렇게 빨리 안정될 수 없었을거다.


엄마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나에게 약간의 공허함이 찾아왔다. 혼자서 텅 빈 방에 있다 보면 행복감의 곡선이 최고점을 쳤다가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정신없는 집을 치우고, 예쁘고 건강한 점심밥을 해 먹고, 한 시간 운동 후 흘린 땀을 샤워로 씻어내고,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그래프는 직선으로 우상향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돈되어 더 이상 할 게 없는 방에서 활자와 영상을 세 시간 이상 소비했을 때부터는 슬슬 심심해진다. 빠르게 무료함을 떨쳐내지 못하면 외로움이 엄습한다. 그런 주말 오후 나는 '엄마의 집'을 생각한다. "아, 지금 엄마랑 공원 가서 산책하다 아이스라떼 한잔 마시고 간식거리 사서 들어와서 티비보다 자면 딱인데."

엄마와 벚꽃길 산책을 하던 날

엄마의 집을 생각한다는 것. 갑자기 외로워질 때 생각할 엄마가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다행스러우며 눈물나게 행복한 일인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깨닫는다.


어느 밤, 엄마가 갑자기 죽어 내가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지는 꿈을 꾸었다. 햇살 좋은 주말에도, 잡채가 먹고 싶은 명절에도, 아파서 열이 펄펄 나는 그 어떤 날에도, 하다 못해 퇴근 후 잠깐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은 밤에도, 나는 엄마가 없어서 울었다. 여전히 나는 혼자인 삶이 좋지만, 이 모든 행복은 행복 사이사이 존재하는 옅은 어둠을 덮어줄 엄마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밤에는 엄마의 집으로 간다. 처음에는 '주 1회 무조건 와서 자야한다'는 엄마의 엄포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으레 간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집은 스피츠 막내 덕분에 더 좁고 더러워졌지만, 20년 동안 고쳐 쓴 이 통일성 없는 인테리어의 엄마 집이 참 좋다.


작년 대만여행 때 엄마가 참 즐거워했었다
데이트하다 갑자기 맞춘 커플 팔찌
어렸을 때 발레 같은 비싼 운동을 못 시켜준 게 한이었다는 엄마는, 내가 성인발레를 시작하자 생일 선물로 어여쁜 발레복을 사줬다.
상황이 나아지면 엄마랑 홍콩부터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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