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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May 28. 2021

엄마를 사랑하지만 다 이해할 순 없어

엄마와 2박 3일 부산여행

엄마와 나는 세상 절친이지만 우리도 가끔 싸운다.

더구나 이번엔 어버이날었다.


우리 엄마는 참 여린 사람이다. 남자친구가 감정주사 좀 맞으라고 할 정도로 매사에 이성적인 나와는 좀 다르다. 연민에 이끌리고 정에 발목 잡히는, 그래서 항상 마음의 맺고 끊음이 힘든 사람. 상처 받는 게 불가피한 인생.


네가 나 같지 않아서 너무 좋아


그래서 엄만 적당하게 싸가지 없고, 남에게 피해 안 줄 정도로 이기적이며, 할 말은 하고 살고, 사소한건 금방 잊어버리는 내가 좋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날씨가 정말 끝내줬던 해운대

하지만 엄마가 이번에 섭섭함을 토로한 포인트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바로 내가 어버이날에 말이나 글로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


나로서는 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어버이날 선물로 그 다음주에 부산여행을 예약해뒀고 모든 경비를 내가 내기로 했으며, 카네이션은 당연히 사드렸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2박이나 엄마 집에서 머물렀다. 효도한다고 부엌의 모든 찬장을 정리했고 외조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하고 용돈도 챙겨드렸다. 엄마랑 따로 산책하고 카페 타임도 가졌다. 더 이상 할 수 없을만큼 다 했다고 생각했을 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날 밤에 나는 섭섭하다는 카톡을 받았다.

너무나 강추하는 아난티힐튼의 산에우스타키오일 카페 오션뷰
오시리아 산책길도 너무 좋다

이번에는 나도 좀 열이 받았다. 그래, 대놓고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 못한건 잘못했다 쳐. 근데 내가 물심양면 시간까지 투자해서 장 3일의 어버이날 이벤트를 치르고 왔는데 그 한마디가 대수야? 사실 너무 많은걸 챙기느라 까먹을 정도였다고. 억울했다. 엄마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나에게 미안하다고, 어젯밤엔 너무 감정적이었다고 다시 카톡을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상할대로 상한 뒤였다.


나도 섭섭한거 있어.
나라고 엄마가 다 좋은줄 알아?


봇물 터지듯 묵혀놨던 응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같은 딸이 어디 있냐고, 내가 삼일간 그렇게 하고 와서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평소에도 잘하는거 인정하지 않냐고, 동생이 있으면 뭐하냐고, 왜 다 내 책임이냐고, 무슨 날마다 엄마아빠 따로 챙겨야 하는거 안 힘든줄 아냐고, 엄마는 아빠 얘기만 나오면 너무 감정적이라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 했고, 말이 없는 남동생까지 '엄마가 누나한테 크게 잘못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 후 일주일간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파크하얏트부산의 망고 애프터눈티 세트(2인 8만원)
상큼한 디저트 위주라 둘이서 싹 다 먹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엄마는 내가 대놓고 감사하다고 하지 않아서 섭섭한게 아니라, 어버이날 당일에 아빠와 따로 식사를 한게 은근히 화가 난거라는  모르지 않았다. '고생은 내가 다 하면서 키웠는데 왜 네 아빠도 효도를 받는거냐'는 질투의 뉘앙스를 미 파악하고 있었는거다.


하지만, 그건 둘의 문제였다. 남녀사이의 감정과 부모 자식민은 혼재될 수 없는 것이다. 엄마는 남녀의 감정선에서 남편을 대하고 있었고, 나는 천륜의 연민 위에서 아버지를 대하고 있었기에, 이 부분만큼은 우리가 서로를 백퍼센트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애프터눈티를 먹었던 파크하얏트 30층 라운지의 광안대교 뷰는 정말이지.. 두번가세요

어버이날 기념 여행은 취소됐다. 전국적으로 비가 억수로 오기도 했고, 싸웠는데 무슨 여행이람. '잘해도 섭섭하다 소리를 들을거면 앞으로는 잘하지 말자'는 분노 어린 다짐을 씹으며 '나쁜 딸 되기' 연습에 돌입했다. 나도 이판사판이라고.


하지만, 엄마 집에 갈 수 없고 엄마에게 시시콜콜 카톡도 못 보내는 비오는 주말은 정말이지 우울하고 심심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고향 같은 존재가 사라지니 성을 내놓고도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일요일 오후, 엄마가 한번 더 카톡을 보내왔다. 나와 이 상태로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거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잘 화해했다. 대신 내가 이제까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히 짚었고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부산여행을 다시 예약했다. 한 주 미룬 부산은 거짓말처럼 완벽한 날씨였고, 비 온 뒤 굳어진 땅처럼 엄마와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부산에 해목 히쯔마부시 먹으러 가는 사람 나야나
그건 엄마 아빠의 문제야


헤어진 부모의 사이에 껴 있는 많은 자녀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각자의 상황은 조금씩 다를테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부 사이의 감정선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맥락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리고 꼭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들이 사랑했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고, 미워하고 증오했던 날들도 있었으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선택들 위에,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이 되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괜히 그 이해 못할 폭풍 같은 감정들 사이에 매몰되어 힘들어하지 않기를. 착한딸 콤플렉스를 가진 나 같은 여성들이 엄마의 감정에 과도하게 이입해 불행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일이 없기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의 존재가 당신들의 영혼을 흔드는 일이 없기를.


지나고 보니 알게되는 진리의 만트라를

너무나 힘들었던 20대의 나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빠져나와. 넌 너의 삶을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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