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May 26. 2022

당신은 잘 쉬고 있나요?

쉬는법을 잊은걸까, 쉼을 잃은걸까

깔끔하게 잘 쉬었다-

는 느낌을 받은지 오래다. 청 빡센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소위 말하는 워라밸이 보장되어 있는 싱글의 자유로운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퇴근 후에 또는 휴일에 시간을 내어 쉬어도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짧은 여행을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쉼이란 무엇일까?


100% 완충의 느낌을 받았던 가장 최근의 휴식은 2019년 7월 뉴욕이었다. 열흘간의 휴가였고 함께 간 친구와 떨어져 개인 일정을 보내는 날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첼시 더하이라인 근처에 있는 테라스 카페에 갔던걸로 기억한다. 쪼리를 신고 터벅터벅 나온 동네 주민들이 선글라스를 걸친 채 브런치를 먹었고 테이블 아래서 강아지들이 햇살을 담요 삼아 졸았다. 그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이스라떼를 홀짝이며 "아 진짜 맛있네" 연신 감탄하며 아이패드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나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햇살도 온도도 그대로였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휴식이었다.

그럼 생각해보자. 그 이후로 나는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었나? 아니다. 그 정도로 바쁘지 않다. 책을 볼 시간이 없었나? 아니다. 지금도 매일 읽는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내 몸이 그 때의 뉴욕을 마지막 쉼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그때 난 단절되어 있었다. 뉴욕의 시차가 한국과 꼬박 반대인 덕분에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 시간대였다. 야외 테라스라 와이파이도 잘 연결되지 않아 카톡이나 SNS도 거의 하지 않은걸로 기억한다(평소 같으면 3분에 한번씩 본다). 무엇보다 '계획'할 것이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이후에 어떤 것을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날은 유독 그랬다. 뼛속까지 J인 나에게 상당히 드문 일인데... 책을 다 읽으면 뭘 할지, 어딜 갈지, 뭘 먹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걷지 뭐, 날씨도 좋은데. 그야말로 사고가 무인 상태였던거다.


여행이라고 모두 이런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는건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은 가이드 수준의 민첩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안되고, 일정이 빡센 여행도 여유가 없다. 동행과 잘 안맞아 불편한 상태라면 이미 감정이 쉬지 못하므로 실패. 이런 케이스를 다 빼고 혼자 여유로울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회사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거나 가족,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쉴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내 원래의 세상-일상의 크고 작은 고민거리와 해결할 문제들이 상주하는 그곳-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면서, 당장의 세상 또한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상태. 그게 나에겐 온전한 쉼이었던거다.  그래서 일상의 공간인 내 집에서 아무리 쉬어도, 엄마와 애인과 여행을 가도 하나도 쉬는 느낌이 안 들었던거다. 나는 철저히 고립되어야 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자 그간 나의 행적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 집에서 거의 동거하다시피 살고 있는 애인의 존재가 왜 그렇게 버거웠는지. 왜 그렇게 몇시간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는지. 되도록이면 한국과 먼 유럽과 미국이, 그곳으로 홀로 떠난 여행이 왜 그토록 좋았었는지.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자. 이제 난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 쉬는법을 잊은걸까, 쉼을 잃은걸까. 둘다 맞다. 코로나가 쉼의 공간들을 앗아갔고 덕분에 난 2년 반동안 제대로 쉬는 법을 잊었다. 여행 없이 쉬는법을 이전엔 알지 못했으므로. 그러므로 다시 찾아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제대로 쉬는 방법을, 쉼의 공간과 감각을.

그래야 이렇게 매일을 견뎌내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누수되는 느낌을 떨칠 수 있고 내 사람들에게 더 양질의 사랑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죄 짓는 기분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민소매에 핫팬츠를 입은 팔다리가 까맣게 타는지도 모르고 Adam Levine의 No One Else Like You를 무한재생하며 맨하튼의 거리를 활보하던 서른살의 내가, 유난히 영화같던 어느 횡단보도 가운데서 태양을 마주서고 "이게 사는거지"라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그 순간. 그 또렷한 희열. 나는 그 순간들을 다시 열심히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아드레날린 한방울이 내 인생에 쉼표를 찍어줄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